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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책12

블랙 톰의 발라드 - 블랙 익스플로테이션 러브크래프티안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빅터 라발은 [블랙 톰의 발라드] 서문에 '엇갈리는 심경으로 H.P. 러브크래프트에게 바친다'라고 적어놓았습니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좋아하지만, 그의 인종차별주의에는 동조할 수 없는 한 사람이자, 후배 작가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죠. 러브크래프트처럼 매독으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아버지를 잃고, 사람들을 멀리 하며 방안에 처박혀서 자란, 사람을 멀리하고 군중공포증까지 가지고 있는,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고대신 - 혹은 괴물 - 에 대한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이 극단적인 백인우월주의 사상을 가지고 인종차별주의자가 되는 것은 일견 예상할 수 있는 흐름입니다. 그의 창작은 자신과 다른 것, 또는 자신의 영역 외, 즉 외계(outer)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자양분으로 .. 2019. 12. 4.
<퀴즈쇼> (by 김영하) - 파란 화면 너머의 그녀, 기억해? 이 소설을 쓰는 내내 이십대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가장 아름다운 자들이 가장 불행하다는 역설. 그들은 비극을 살면서도 희극인 줄 알고 희극을 연기하면서도 비극이라고 믿는다. 굳이 말하자면 이 소설은 컴퓨터 네트워크 시대의 성장담이고 연애소설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십대에 PC통신을 경험했고, 거기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어쩌면 나는 익명의 인간과 인간이 실시간으로 대화하며 친구와 연인으로 발전해갈 수 있음을 알게 된 첫 세대일지도 모른다. 온라인은 언제나 부당하게 폄하돼 왔다. 그것은 일회성의, 익명의, 무책임한 그리고 심지어는 부도덕한 공간으로 치부되었다. 뭐, 전혀 터무니 없는 얘기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나를 비롯한 새로운 세대는 바로 그 '쓰레기' 위에서 자라났다. 우리는 거기에서 새로운 .. 2017. 3. 21.
<코넌 도일을 읽는 밤> by 마이클 더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영화 중에 ‘다크 하프’라는 영화가 있다. 돈이 되지 않는 순수문학 소설을 쓰는 작가가 돈을 벌기 위해 ‘조지 스타크’라는 필명을 만들어서 대중 소설을 쓰고, 그 소설이 성공해서 많은 돈을 번다. 하지만 다른 필명으로 돈을 버는 것에 염증을 느낀 그는 조지 스타크라는 필명을 폐기하고, 다시 순수문학 작가로 돌아오기로 결심하는데, 갑자기 조지 스타크라는 존재가 살아나서 그의 주변 사람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다크 하프’는 자신의 문명(文名)에 부담을 느낀 스티븐 킹이 실제로 리처드 버크먼이라는 필명을 만들어서 6편의 소설을 발표한 것에서 착상을 얻어 쓰인 소설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의 줄거리는 그보다 셜록 홈즈와 코난.. 2017. 3. 16.
<페이스 오프> - 소문난 포틀럭 1. 국제 스릴러 작가 협회가 기획하고, 데이비드 발다치가 편집을 맡은 는 스릴러 작가들의 자발적이고 충성스런 움직임 끝에 나온 선집選集입니다. 데니스 루헤인이나 마이클 코넬리, 제프리 디버와 리 차차일드 같은 작가들이 스스로 자신의 캐릭터를 낯선 다른 작가들의 세계 속으로 보내는 것에 동의했고, 함께 작업을 해서 11편의 단편을 써냈죠. 저마다 내로라 하는 명탐정과 수사관들이 하나의 작품 안에서 크로스오버를 합니다. 2. 물론 멋지게 보일 수도 있지만, 얼핏 듣기에도 진입장벽이 만만찮아 보이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추리물에 익숙치 않은 한국의 독자들에겐 더욱 그렇죠. 데니스 루헤인이나 마이클 코넬리, 제프리 디버, 리 차일드 정도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익숙할 만 하지만, 나머지 작가의 작품과 캐릭터를 아는.. 2017. 3. 14.
<바다가 들린다> - 햇빛 찬란한, 하지만 혼란스럽던 날들 삶은 길고 그렇게 쉽지도 않고 언제나 또 다른 반전 - 이적, 1. "도쿄에 정말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욕조에서 자는 사람이야." 화려한 조명으로 밤에 찬란하게 빛나던 코오치 성(城), 그리고 수많은 멜로드라마에서 계속해서 인용되었던 지하철 역에서의 애절한 재회와 리카코의 허리숙인 인사를 마지막 장면으로, 지브리에서 제작한 72분 짜리 애니메이션은 끝났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이 이야기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히무라 사에코가 쓴 두 권 짜리 소설 는 그것과는 좀 많이 다른 이야기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은 소년기의 아련한 추억과 첫사랑의 재회, 그리고 오랫동안 감춰왔던 진심과 새로운 로맨스의 시작을 알리며 마무리 한다. 하지만 히무라 사에코의 소설은 잊지 않는다. 친구와 같은 여.. 2017. 3. 11.
[64] - 뒷표지에 낚이지 말 것! 1.경찰서 내의 이야기를 리얼하게 다룬 추리소설이라면, 그 첫머리에 에드 멕베인의 '87분서 시리즈'를 연상하게 된다. FBI라는 연방수사국을 제외하면, 각 경찰조직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미국의 경찰과 일본의 경찰조직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아무래도 요코야마 히데오의 [64]를 에드 멕베인의 소설에 비견하는 것은 곤란하겠지만, 적어도 경찰서 내의 이야기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접근한다는 지점은 비슷하다. 하지만 그 둘을 완전히 다른 소설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아무래도 독특한 일본의 경찰조직이다. 2. '춤추는 대수사선', '파트너', '케이조쿠'를 비롯한, 일본의 수많은 경찰 추리드라마를 즐기는 이에게라면, 전혀 낯설지 않은 단어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캐리어'라는 단어인데, 이는 한국의 행정고시에 해당하.. 2017.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