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책12 <셜록 홈즈:모리어티의 죽음> - 낯선 화자를 조심하라 1. 앤터니 호로비츠의 에는 두 가지의 텍스트 트릭이 있습니다. 하나는 작가가 의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와 상관없이) 출판사인 황금가지가 의도한 것이죠. 작가가 의도한 트릭을 밝히는 것은 엄청난 스포일러가 될테니 그만두죠. 사실상 이 소설에서 그 트릭은 80% 이상에 가까우니까요. 하지만 추리물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정확하게는 아니라도, 대충 그 트릭의 모양새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텍스트 트릭이라는 것 자체가 활용도가 그리 높지 않으니까요. 더군다나 이 분야에는 너무나도 엄청나고 유명한 레퍼런스가 있지 않습니까.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 소설 말입니다. 텍스트 트릭하면 떠오르는 작품들이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 소설과 아비코 다케마루의 정도일텐데, 앤터니 호로비츠가 을 읽어봤을 리는 없.. 2017. 3. 8. 핑거포스트, 1663 - 텍스트로 부리는 현란한 기교의 정점 1. 범죄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범죄 수사가 과학화 되면서, 범죄의 동기가 다양해지면서, 무엇보다도 조지 오웰이 말한 '영국식 살인의 쇠락 Decline of English Murder'과 함께 클래식 추리물은 갈 곳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추리방식은 과학적인 척 했지만, 상당부분 잘못된 방식에 의존하고 있었고, 그런 방식에 의해 수많은 추리의 업적을 남긴 위대한 탐정들은 그저 전설로만 남아야 했다. 현대문명의 놀라운 발전은 범죄 역시도 현대화 시켰고, 현대화 된 범죄는 일개 탐정의 추리로 해결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해져 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주구장창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만 써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명탐정은 이미 식상한 아이템이었고, 독자들은 .. 2017. 3. 7. 살인자의 기억법 - 귀고리를 하고 시상대에 오른 남자의 최신작 #. 얼마 전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김영하 작가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다룬 것을 들었다. 김영하 작가가 직접 출연했었는데, 그곳에서 여전히 김영하 작가는 '처음 문학상을 받을 때 염색을 하고, 귀고리를 하고 시상대에 올라간 작가'로 이야기 되고 있었다. 더 재밌는 건, 2010년에 재정비해 출간된 김영하 작가의 데뷔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알라딘 소갯글에도 똑같은 이야기가 있다는 점이다. 그 글에서 김영하는 '한국 문단 사상 처음으로 귀고리를 하고 문학상 시상대에 오른 남자'로 지칭되고 있었다. 물론 그가 데뷔하던 해가 1996년이었고, 그때는 문단 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보수적이던 시기였다. 소설가가 문제가 아니라 남자가수가 귀고리를 하고 무대에 올라도 방송금지를 .. 2017. 3. 6. 형사 실프와 평행우주의 인생들 - 평행 우주는 없다 #. 원래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본 것은 몇 년 전 도서관에서였다. 제목만 놓고 보자면, '형사 실프'보다는 '평행 우주의 인생들' 쪽에 더 관심이 갔고, 책을 대여하긴 했으나, 당시엔 너무 바빠서 도저히 읽을 시간을 낼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한 줄도 읽지 못하다가 반납일이 다가와 그대로 반납했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토마스 핀천의 를 읽다가 다시 이 책이 생각났다. 다른 정보 없이 제목만 놓고 판단하기에, 당연히 처럼 물리학의 개념을 포스트 모더니즘과 연관시킨 소설 중의 하나라고 짐작했던 것이고, 연이어 읽기에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서 결국 이 책도 주문하고 말았다. 그리고 읽으면서 깨달았는데, 내 짐작은 반만 맞았다. #. 이 책의 원제는 그냥 '실프'이다. '형사'도 없고, '평행 우주의 인생들.. 2017. 3. 6. 고래 (천명관) - 그것은 로또의 법칙이었다 2001년의 한국 문단은 김훈의 [칼의 노래]로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을 맞았다. 2003년의 한국문단엔 박민규라는 괴물 같은 신예가 [지구영웅전설]과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믿을 수 없는 데뷔작을 들고 (차마 얘기하기도 민망할 정도의 진부한 레토릭을 빌려 말하자면)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리고 2004년에 또 천명관의 [고래]가 발표 되었다. 마치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포수'라던 최기문이 등장하고, 그 다음해에 다시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포수'인 진갑용이 등장했는데, 또 그 다음 해에 홍성흔이 등장한 90년대 중후반의 프로야구 같다고 할까? 그것은 신인 등장의 법칙이었다. 꾸준히 한국 소설의 흐름을 따라 잡아왔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천명관의 소설을, 그것도 [고래.. 2017. 3. 5. 마션 - 21세기에 다시 태어난 '노인과 바다' #. 공돌이가 아니라서, 소설에 등장하는 과학적인 실험들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 누군가가 - 정확히 말하자면 '씨네타운 19'의 이승훈 PD가 - [마션]을 가리켜 '긴 세월이 지나도 널리 읽힐' '고전의 반열에 올라갈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언급했을 때, 그 표현에 그리 무게감을 두진 않았습니다. 사람은 늘 그럴 때가 있죠. 뭔가 새로운 아이템을 만났는데, 그게 예상 외로 너무 괜찮을 때 잠깐 들떠서 본연의 가치보다 그것을 더 크게 평가하게 되고, 그게 지나쳐서 과장하게 되는 경우 말입니다. 특히 이승훈 PD의 언행은 - 때로는 고의적으로, 때로는 비고의적으로 - 종종 그러한 경향을 보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괜찮은 소설이겠구나' 정도로만 받아들였단 말이죠. 책을 1/4쯤 읽었을 때.. 2017. 3. 5.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