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을 쓰는 내내 이십대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가장 아름다운 자들이 가장 불행하다는 역설. 그들은 비극을 살면서도 희극인 줄 알고 희극을 연기하면서도 비극이라고 믿는다. 굳이 말하자면 이 소설은 컴퓨터 네트워크 시대의 성장담이고 연애소설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십대에 PC통신을 경험했고, 거기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어쩌면 나는 익명의 인간과 인간이 실시간으로 대화하며 친구와 연인으로 발전해갈 수 있음을 알게 된 첫 세대일지도 모른다. 온라인은 언제나 부당하게 폄하돼 왔다. 그것은 일회성의, 익명의, 무책임한 그리고 심지어는 부도덕한 공간으로 치부되었다. 뭐, 전혀 터무니 없는 얘기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나를 비롯한 새로운 세대는 바로 그 '쓰레기' 위에서 자라났다. 우리는 거기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연애를 하고 논쟁을 벌였다.
- 김영하, <퀴즈쇼> 작가의 말 중에서
본문이 아닌 서문이나 작가의 말을 읽으며 감동했던 소설이 둘 있다. 하나는 너무 유명한 – 너무 유명해서 본문이 아니라 서문이 수능 문제집에 등장했던 – 최인훈의 <화두>이다. 본문은 무척 지루했지만, 과도기의 역사와 인류의 사상적 움직임을 멋진 메타포로 꿰뚫어내는 거장의 서문은 무척 아름다웠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하나는 김영하의 <퀴즈쇼>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 PC통신이라는 공간을 통해 전화선으로 소통하던 인간들.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였고, 이 소설이 그런 “그들의 20대에 바치는 소설"이라는 말을 읽었을 때부터 이미 나는 감동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이 소설을 처음 읽었던 시절로부터 지금은 많이 변했다. “온라인은 언제나 부당하게 폄하돼 왔다”라고 말하기에 지금의 시대는 어울리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나 역시 지금의 온라인에 대해선 오래 전의 어른들처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많인 꼰대들이 그렇듯 ‘우리 때의 파란 채팅창’은 순수하고 아름다웠으며, 지금의 아이들이 얘기를 나누는 스마트폰 속의 잡스러운 노란 말풍선과는 다른 것이었다고 믿고 싶을지도.
아직도 그때 파란 채팅창 너머의 사람들과 나누던 이야기를 기억한다. 지금은 토렌트로 몇 분 만에 다운 받을 수 있는 그렉 아라키의 영화를 보려면 두 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가 누군가가 복사해 준 화질도 좋지 않은 비디오 테이프를 들고 와야 했던 그때, 아무도 알지 못하는 영화의 이야기를 하며, 때론 하루키와 왕가위에 대해서 떠들고, 밤을 새우며 결국 서로에 대해 얼굴도 모르면서 나누었던 속 깊은 이야기들... 언젠가는 저 아이와 커피숍에 앉아 얼굴을 맞대고 더 깊고 멋진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라 꿈꾸던 환타지, 때론 밖에서 누군가에게 짜증나고 화가 나는 일을 당했을 때 전화비가 나가는 줄도 모르고,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서 내 이야기를 들어 줄 그 아이를 기다렸던 시간들... 김영하가 우리의 대변인으로서 ‘그 시절’을 이야기 하는데, 내가 감동하지 않을 방법은 없었다.
채팅의 위대함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서로의 대화가 무의미하게 공기 중으로 흩어지지 아니하고, 조용히 파란 화면 위로 스크롤 되어 올라간다는 것이고, 그것이 더더욱 좋은 점은 육성으로 들으면 유치하고 낯 부끄러울 이야기도 전혀 그렇지 않게 보이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아아, 나는 이 뛰는 가슴과 솟구쳐 오르는 감정을 너에게 타이핑하여 전달해 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민했고, 그 말을 하기 위하여 얼마나 오래동안 너를 기다렸으며, 자연스럽게 그 말을 꺼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돌려가며 꺼내야 했었던가. 가까스로 꺼낸 나의 수줍은 고백에 땀 흘리는 이모티콘으로 답하는 너와 점점 위쪽으로 스크롤 되어 올라가는 내 고백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그 위에 너의 찡그린 얼굴을 겹치던 스무 살 무렵의 시간들... 사진과 이미지도 없고 동영상도 없고, 음성채팅과 화상캠도 없었으되, 훨씬 더 진솔했고 가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시절.
고백하자면 현실은 김영하의 <퀴즈쇼>와는 많이 달랐다. 내가 진심을 털어놓고 고백한다고, 그것을 반대편의 저 아이가 꼭 진지하게 받아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 아이에게 그냥 저 파란 화면은 일상에서 벗어나 잠깐씩 들리는 놀이공간에 불과할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아 - 김영하는 어쩌면 우리를 이렇게 잘 알고 있을까. 그는 우리가 꿈꾸었던 모든 것을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보여준다. 우리를 이해해주는 파란 화면 속의 귀엽고 어여쁘고 (심지어는) 부유한 연인, 우리의 무용한 퀴즈 지식들이 유용을 거쳐, 무협지적 경쟁의 중요한 무공으로 취급되는 세계까지. 현실에선 가져보지 못했지만, 그 모든 것이 이루어진 <퀴즈쇼>의 세계는 90년대의 PC통신과 파란 화면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매혹의 공간이다.
어쨌든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저 파란화면 위에 우리가 나눠왔던 이야기는 그냥 심심풀이였을까. 그건 그냥 나우누리 서버 어딘가에 흔적으로만 남아있을 소모품이었을까.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던 속 깊은 이야기들을 털어놓고는, 그것은 그냥 아무 의미도 아니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대꾸하는 법을, 그때 난 배우지 못했었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김영하의 <퀴즈쇼>에는 그런 일 따윈 없다. 원래 그때 내가 알았고, 꿈꾸던 세상은 김영하의 <퀴즈쇼>같아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난 활자 속에서 그때 내가 꿈꾸었던 세상을 보았다. 어쩌면 그건 그냥 판타지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 혹은 같은 세상을 살았던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건 상관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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