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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책

<페이스 오프> - 소문난 포틀럭



1. 


국제 스릴러 작가 협회가 기획하고, 데이비드 발다치가 편집을 맡은 <페이스 오프>는 스릴러 작가들의 자발적이고 충성스런 움직임 끝에 나온 선집選集입니다. 데니스 루헤인이나 마이클 코넬리, 제프리 디버와 리 차차일드 같은 작가들이 스스로 자신의 캐릭터를 낯선 다른 작가들의 세계 속으로 보내는 것에 동의했고, 함께 작업을 해서 11편의 단편을 써냈죠. 저마다 내로라 하는 명탐정과 수사관들이 하나의 작품 안에서 크로스오버를 합니다.

2.

물론 멋지게 보일 수도 있지만, 얼핏 듣기에도 진입장벽이 만만찮아 보이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추리물에 익숙치 않은 한국의 독자들에겐 더욱 그렇죠. 데니스 루헤인이나 마이클 코넬리, 제프리 디버, 리 차일드  정도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익숙할 만 하지만, 나머지 작가의 작품과 캐릭터를 아는 독자들은 그렇게 흔치 않을 겁니다. 평소의 활약상을 잘 모르는 탐정들이 나와서 만나봤자, 그들이 만들어내는 시너지나 케미스트리를 이해하긴는 쉽지 않죠. 즉 이 11편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이해하자면, 최소한 22 작가의 작품과 캐릭터를 익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지만, 짧은 단편에서, 그것도 만만찮은 유명세의 캐릭터와 만나서 그 매력을 발휘하기란 그렇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조금 더 복잡한 또 하나의 문제도 야기합니다. 

3.

에른네스트 만델은 <즐거운 살인- 범죄소설의 사회사 Delightful Murder - A Social History of the Crime Story>라는 책을 통해 범죄 소설을 작가 개인의 영향보다 사회적인 맥락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범죄는 사회를 반영하며 그 범죄를 다루는 범죄 소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범죄가 일어나는 매커니즘을 반영한다는 것이죠. 재밌게도 이 선집의 작가 중 사회파 추리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이러한 만델의 이론에 대한 좋은 케이스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데니스 루헤인이 그렇죠. <가라, 아이야, 가라>의 초반 20페이지는 미국 동부 빈민가의 숨막히는 생활에 대해 끝내주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환경에서 범죄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관계를 보여주죠. 패트릭 켄지는 그런 동부의 생활 속에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탐정입니다.  반면 마이클 코넬리의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미키 할러는 전형적인 LA식 뺀질이 캐릭터입니다. 적당히 불법과 협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요란한 변호사죠. 해리 보슈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역시 LA소속의 형사다운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집의 첫 작품인 <야간비행>에서 패트릭 켄지와 해리 보슈가 나누는 대화는 굉장히 유의미하게 다가옵니다. 

  "내가 만약 LA에 가게 된다면."
  보슈가 그 손을 잡고 흔들었다. 
  "우습군. 당신이 LA에 있는 건 상상이 안 되는데."
  패트릭이 대꾸했다.
  "나도 당신이 LA말고 다른 곳에 있는 건 상상할 수 없어요."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코틀랜드 탐정인 이언 랜킨의 존 레버스와 잉글랜드의 로이 그레이스가 만나는 두 번째 단편 '인 더 닉 오브 타임'도 마찬가지죠.제임스 엘로이는 이언 랜킨을 '타탄 투아르의 왕 the king of tartan noir'라고 불렀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타탄 누아르란 도덕적 모호함을 매력으로 하는 스코틀랜드 문학의 전통을 범죄 소설에 끌고 온 스코틀랜드 특유의 장르입니다. 하지만 로이 그레이스의 경우엔 조금 더 스트레이트한 스타일의 경찰이죠. 그래서 이런 물음이 발생합니다.

  로이 그레이스와 존 레버스는 세대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다.
  그리고 이 둘은 법 집행에 대한 생각도 아주 다르다.
  또 이들 사이에는 800킬로미터란 거리가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 이 두 남자가 어떻게 현실적으로 만나서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있을까?

조금 더 심한 경우에는 리얼리즘 세계의 인물이 환타지나 호러의 세계로 들어가 헤매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물론 독자들의 경우에는 그 두 세계관에 대해 충분한 학습이 없는 상태에서요. 

다시 말하지만, 진입장벽이 만만찮은 기획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에 익숙하다면 정말 재밌고 흥미로운 컬래버레이션이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김용 세계관에 완벽하게 통달한 사람에겐 왕가위의 '동사서독'은 어마어마하게 흥미진진한 텍스트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세계에 대해 잘 모르거나, 혹은 일부만 아는 독자들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소리만 중얼거리는 영화에 다름 아니죠. 

3. 

그러므로 대개 이런 류의 기획은 - 안타깝게도 - 흔한 시쳇말의 확인으로 끝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라는 레토릭 말이죠. <페이스 오프>는 국제 스릴러 작가 협회가 기획한 '소문난 잔치'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작가들이 각자 자신의 소문난 재료들을 들고 온다는 점에서 '소문난 포틀럭 potluck' 에 가깝죠. 작가들은 저마다 자신 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파티장에 왔습니다. 그리고 짝을 지어서 재료들을 섞고 솜씨를 더해 결과물을 테이블에 차려 놓았습니다. 결과는요? 다행히도 '먹을 것 없다'라고 혹평할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일류 주방장들이 일류 재료들을 가지고 만들었으니 맛이 없으면 아무래도 곤란하겠죠. 하지만 파티의 주인은 음식 준비를 모두 참석자들에게 일임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비슷한 요리가 나오기도 하고, 어떤 요리의 경우에는 다소 엉뚱하기도 합니다. 기대하던 것과 많이 다른 모습도 보이고, 주문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돌파한 경우도 있죠. 결과는요? 상다리 부러지게 여러 개의 요리가 올라 있기는 합니다만, 풍성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재료는 다양한데 요리가 다양한 건 아니고, 개인적으로는 독특한 맛을 내는 몇 개의 요리와 맛있는 요리 몇 개를 위주로 집어먹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요리의 시작은 데니스 루헤인과 마이클 코넬리의 <야간비행>입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의 지명도가 높은 두 작가이고,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 데니스 루헤인을 좀 더 - 작가들이라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패트릭 켄지의 동네에 놀러 온 해리 보슈가 아직은 동부의 공기에 적응이 덜 된 느낌이 듭니다. 소품 형식이라 벌어지는 사건은 그닥 흥미가 당기는 것이 아니었고, 가장 재밌는 장면은 역시 패트릭과 해리가 재즈와 CD, mp3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다음 작품인 이언 랜킨과 피터 제임스의 <인 더 닉 오브 타임>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어벤저스2>에서 가장 재밌는 장면은 신나는 액션 씬보다도 캡틴 아메리카, 토르, 아이언맨이 거실에 모여서 망치 가지고 장난 치는 장면이 아니던가요?

그리고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번역의 문제. 이 작품에서 해리 보슈는 패트릭 켄지에게 반말을 쓰고, 패트릭 켄지는 해리에게 존댓말을 씁니다. 해리가 나이가 많기 때문일까요, 아님 거친 LA의 캐릭터인 해리와 깔끔한 동부 탐정인 패트릭 켄지의 차이 때문일까요? 비슷한 문제가 <대단한 배려>에서도 발생하는데 잭 리처와 닉 헬러는 서로 존대를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리처는 반말을 쓰고 헬러는 존댓말을 씁니다. (아마 중간에 잭이 나이가 많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긴 합니다) 어쨌든 해리와 패트릭의 경우엔 서로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니 상호 존대를 하는 편이 맞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상관없는 이야기인데, 말 나온 김에 번역 얘기 하나 더. 장르 소설 번역본의 경우, 대화가 아닌 지문에도 구어체로 번역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그것은'이라고 번역해야 할 것을, '그거는'이라고 하는 경우) 이것은 혹시 원문이 구어체라서 그것을 살리기 위한 번역일까요, 아니면 그냥 번역가가 문장에 익숙치 않은 탓일까요? (이 책에서도 종종 보입니다)

4.

갈 길이 머니까 각 작품별로 포인트를 조금만 살펴 보겠습니다. 이언 랜킨과 피터 제임스의 <인 더 닉 오브 타임>은 재밌는 소품입니다.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레버스 경위와 로이 그레이스가 등장하는 오 헨리의 단편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가스등>은 흔한 호러 설정의 이야기입니다. 80년대 <환상특급>류의 미드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죠. 개인적으로는 두 등장인물 간의 밸런스 조절에 실패한 이야기로 보이는데, 사실상 등장인물들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그리 많아 보이진 않습니다. 그래도 너무 전형적인 스타일로 흘러간 게 좀 아쉽네요.<웃는 부처>는 한국의 독자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이야기로 보입니다. 저도 추리물과 초자연적인 현상을 결합시키거나 혹은 추리물과 포스트모던, 아니면 환타지를 결합시킨 소설(추리물의 적통인 영국 작가들이 요즘 이런 짓을 많이 하더군요. 재스퍼 포드의 <제인 에어 납치사건>이나 더글러스 애덤스의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 사무소> 혹은 재더다이어 베리의 <탐정매뉴얼> 같은 경우)을 몇 개 읽어봤는데 취향에 맞지 않더군요. 개인적으로 추리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닫혀있는 구조와 앞뒤가 완벽하게 짜맞춰지는 느낌이 좋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열린 결말 스릴러'라든지 - 실제로 장윤현 감독의 <텔미썸띵>이 쓴 표현입니다 - 범인이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고 모호하게 끝나는 요즘의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클래식하게 수수께끼가 완벽하게 풀리는 것을 좋아하죠. 물론 <웃는 부처>는 그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추리소설에 초자연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는 거죠. 

<팬더를 찾아>와 <링컨과 프레이>는 그나마 전통적인 미스테리 소설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특히 제일 맘에 드는 게 <링컨과 프레이>인데요. 정말 전통적인 작법으로 기대한 딱 그만큼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야기가 너무 짧지도 않고, 충분히 복잡한 사건을 구성했으며, 적당한 트릭과 미스테리도 있고, 안락의자 탐정인 링컨 라임과 몸으로 움직이는 루카스 데븐포트가 자신의 역할을 정확하게 분배받아 비슷한 비중으로 활약합니다. 심지어 둘 사이의 갈등도 약간 보여주죠. 작업방식도 정확합니다. 서로 번갈아 쓰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플롯을 만들고 각자가 자신 있는 부분을 쓴 뒤, 합치고 다시 한 번 다듬는 거죠. 

<지옥의 밤>은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 중에서 조금 후진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입니다. 특히 결말 부분의 권선징악은 너무 진부해서 '설마 이건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딱 맞더군요. <정차>는 스피디한 문장이 돋보입니다만, 솔직히 션 라일리가 등장할 필요가 있는 이야기였나, 싶은 스토리입니다. 배경 설명 없이 딱 본문의 사건만 가지고 흘러가는 드라이한 스타일의 추리소설인데,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명한 등장인물들을 끌어오려면 그들의 개성이 조금 더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심지어 글렌 카버 같은 경우엔 린우드 바클레이의 등장인물 중에 그렇게 중요한 비중의 캐릭터도 아니라고 하더군요. 

<침묵의 사냥>과 <악마의 뼈>는 쉽게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입니다. 다만 <침묵의 사냥>은 또 한 번 제3세계-서방구원자 시각의 이야기라는 점이 살짝 걸리죠. <악마의 뼈>는 흔한 이야기입니다만, 악당 캐릭터가 귀엽습니다. 거기에 맞서는 두 히어로의 콤비 플레이도 심심하지 않구요. 

<대단한 배려>는 잭 리처와 닉 헬러가 만나는 이야기답게 하드 보일드한 소품입니다. 딱 에필로그로 쓸 정도의 소소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포틀럭을 주최할 때는 두 가지 스타일이 있습니다. 하나는 손님들에게 자유롭게 자신들의 요리를 들고 오게 하는 것입니다. 주최자는 손님을 정해서 초대하고 희미한 아웃라인만 정해줄 뿐 구체적으로 그들의 요리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페이스 오프>는 이 경우에 속합니다. 손님들은 자신이 만나서 자유롭게 작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작품의 편차가 좀 있고, 겹치는 요리도 좀 있고, 재료들이 불균질하게 섞인 경우도 좀 생기게 된 것이죠. 뭐 그래도 즐길 수 있다면 상관없겠습니다만.

다른 방법은 주최자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프로듀싱하거나 어레인지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짝만 맞춰줄 것이 아니라 작업방식이나 장르, 플롯 등에 참견하는 것이죠. 이것보다 좀 더 참신한 이야기로, 가능하면 두 주인공의 비중이 비슷하도록, 반드시 하나 이상의 미스터리가 등장하고, 하나 이상의 트릭이 있는 이야기를 쓸 것, 두 주인공이 직간접적으로 갈등하는 장면을 넣을 것 등등. 작업하는 것에 조금 더 많은 룰과 제약을 걸었다면 어땠을까요. 

<페이스 오프>란 제목은 하키가 시작할 때 자세를 말하며, '시합개시' '대결'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알고 있습니다. 두 주인공의 '대결'을 위해서는 운동장만 마련해주고 마음껏 뛰어노는 방식보다는 조금은 그에 걸맞은 룰을 주는 것이 어땠을까요. 쉽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은 듭니다. 어쨌든 유명한 작가들에게 작품을 기부 받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띠지의 표현처럼 이것이 소문만큼 엄청나고 대단한 구경거리라는 생각은 그렇게 들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