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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즐겨가는 커뮤니티 사이트 중 한 사이트에서 큰 분란이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분란의 시작은 한 유저가 심심풀이 삼아 올린 vs. 글 때문이었죠. 문제가 된 글의 내용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집에서 키우던 개와 모르는 사람이 물에 빠졌습니다. 당신은 둘 중 하나만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를, 혹은 어떤 존재를 살리는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사람을 살린다'를 선택했지만, (어떤 이들의) 생각보단 많은 사람들이 '내 개를 살린다'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싸움이 시작되었죠. 개를 살린다, 를 선택한 사람들은 순식간에 비난의 폭주와 싸워야 했습니다. 게시판은 순식간에 개 vs. 사람에 관한 글로 뒤덮였고, 누군가의 빈정거림처럼 '개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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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물애호가가 아닙니다. 개나 고양이 등 애완(혹은 반려)동물들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혐오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무관심합니다. 개인적으론 반려동물에게 이름을 붙여 부르는 편도 아닙니다. 저한테 '개'는 '개'이고, '고양이'는 '고양이'입니다. 인간 이외의 동물을 대하는 제 태도는 그 정도입니다. 그리고 전 위의 질문에 '당연히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 질문에서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대답하고 '개를 구할 것이다'라고 대답한 사람들에게 비난을 퍼부은 사람들이 논리적이거나 합당한 이유에서 그런 주장을 한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그 사람들에겐 '사람을 구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일이라, 그들은 구태여 그것이 왜 옳은지 이유를 밝혀야 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은 감정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반면, 어쨌든 '사람보다 개를 먼저 구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상식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소수의 의견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소수의 의견을 자신있게 주장하기 위해선, 언제나 논리적으로 더 벼려내서 표현해야 합니다. 왜냐면 그들은 곧 많은 사람들의 비난에 직접적으로 맞닥뜨려야 할 것이고, 그 비난에 맞서기 위해선 일단 자기 자신부터 설득할만한 논리적인 이유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많은 사람들의 의견에 반하는 입장에 서는 것은 자신이 논리적/윤리적으로 옳다는 확신을 필요로 합니다. 상식에 반하면서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냥 고집 센 바보밖에 못 되지요.
'모르는 사람' 보다 '내 개'의 생명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반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종(種, species)의 편견을 걸고 넘어지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이는 동물 애호가들이 동물의 권리를 주장할 때 흔히 쓰이는 전략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인간 종족 human species의 생명과 권리가 과연 다른 동물보다 우위에 있는가, 에 대해 먼저 의문을 제기합니다. 인간이 과연 자신의 생존과 편의를 위해 다른 생명체들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있는가, 에 의문을 제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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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물에 빠진 모르는 사람'과 '내가 기르는 개'의 문제에서, '종의 편견'을 벗어나 보면 문제는 좀 더 쉬워집니다. 사람의 목숨이 개의 목숨보다 보편적으로 귀중하다는 전제가 없다면, 둘의 목숨의 가치는 같아지고 이후의 문제는 개인의 선택으로 치환됩니다. 그리고 개인에게는 '같은 가치'의 생명 중 하나를 선택할 때 호불호를 가지거나 선호하는 생명을 살릴만한 충분한 권리가 있죠. 모르는 사람의 생명보다 친밀하고 사랑하는 개의 생명을 살릴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사람의 생명이 개의 생명에 비해 결코 귀중하지 않으며, 둘의 가치는 동등하다, 는 전제에서만 성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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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저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 가장 간단한 전략은, 저 전제를 틀린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생각보다 쉽진 않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개의 생명'에 비해 더 큰 가치를 가진다는 논리적 증명을, 당신은 어떻게 해낼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다른 동물들은 닷새동안 한 번에 창조하셨고, 사람은 키핑해두셨다가 마지막 날 흙으로 빚어서 만들어서 생령을 불어넣어주셨으니까?
이걸 증명해내려면, 우린 다시 종의 편견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인간이므로, 인간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보편적으로, 지구적인 관점에서, 혹은 가이아가 됐든 뭐가 됐든, 인간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난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인간의 생명과 가치가 개보다 위에 있어야 될 이유따윈, 사실 없지 않겠습니까?
지구든 가이아든, 어쨌든 그런 존재가 보기에 인간은 개보다 훨씬 더 해악을 크게 끼치는 존재일지도 모르는 겁니다. 그런 입장에서 인간의 가치가 개보다 더 위대함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 따윈 없습니다.
저는 이 문제에서 그냥 맘 편히, 제가 인간 종족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다른 종족을 이용하고 착취할 수 밖에 없는 인간 종족의 편이기를 선택했습니다. 지구 상의 모든 종은, 어차피 다른 종을 이용하여 생존합니다. 동물의 생명의 가치를 인간과 동일하게 끌어올리고 존중해야 하면, 식물 역시 그러지 말란 법은 없을 것입니다. 식물도 명백히 번식을 하고 생존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생명체입니다. 인간을 위해 동물을 먹지 말고, 그들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식물 역시 마찬가지로 취급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결국 최종적으로 인간은 인간의 편에 서야 하는 게 (윤리적인 옳고 그름을 떠나) 이기적이지만, 어쨌든 인간종족의 생존에 이바지하는 일 아닐까요? (이 문제에 대해선 좀 더 길고 지루한 논증이 있지만, 나중에 시간나면 따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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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전 동물애호가도 아니며 반려동물을 키우는 걸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반려동물과 주인들이 가지는 정서적인 교감이라는 게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보다 '키우던 개'를 택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걸로 봐서는 그 '정서적 교감'이라는 것이 어쩌면 '종'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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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진화심리학적으로 재밌는 가설을 하나 세워보겠습니다. 예전의 지구는 수많은 종들이 생존을 위해 싸우는 전쟁터였습니다. 그리고 그 종들의 싸움에서 인류는 다른 종들을 정복하고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사람' 대신 '개'를 구한다는 주장을 향한 사람들의 분노는, 그런 '종의 전쟁'이 다시 벌어졌을 때 저들은 인류를 배신하고 다른 종의 편에 설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적인 두려움의 발현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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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을 보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이 영화가 인간 종족에 의해 만들어져서, 인간종족이 볼 수 있도록 상영되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각본은 유인원들apes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유인원 시저는 드라마틱한 출생부터 시작해서, 완벽한 주인공의 스토리를 가집니다. 그리고 인간은 시저의 주변인물일 뿐이죠. 시저는 높은 지능과 완벽한 모티브를 부여받고 자신의 고통과 운명을 받아들이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반면 인간들은 멍청하거나 실수투성이, 혹은 악랄한 캐릭터들 뿐이죠. 우리가 감정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는 시저밖에 없는데.. CG와 이모션 캡쳐라는 첨단기술과 앤디 서키스라는 배우의 놀라운 연기가 결합해서 만들어낸 퍼포먼스는 사람들이 그런 유인원들에게 공감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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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더욱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그 정서적 공감과 종의 편견에 대한 문제입니다. 앞서 개 vs. 사람의 예에서어떤 사람들은 사람이라는 종의 편을 들기 보단, 자신과 정서적인 교감이 있는 개를 택했습니다. 그런데 시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깊은 정서적인 교감을 가졌던 윌과의 생활 대신, 자신의 종을 이끌고 인간이라는 존재와 싸우기를 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서부터 인간과 유인원이라는 두 종의 대결이 시작되고, 인류와 유인원간의 전쟁의 크로니클이 리부트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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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것들 중에 '모르는 사람'과 '내가 키우는 개'를 구하는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호불호나 선호의 문제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종'간의 우위에 대한 문제로 치환시키면, 인간 존재 전체를 위협하는 문제가 될 수도 있죠.
비약이라구요?
어차피 모든 인문학의 문제는 실생활의 자질구레한 문제를 보편적인 윤리와 논리의 영역으로 치환시키는 것 아닐까요.
물에 빠진 사람 vs. 개의 문제를 좀 더 단순한 종의 문제로 치환 시켜 보겠습니다.
당신이 무인도에서 굶어죽게 되었을 때, 식량은 떨어지고, 당신이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곤 키우던 개와, 모르는 사람 밖에 남지 않았다면 당신은 무엇을 먼저 먹겠습니까?
개가 진화하여, 인류를 정복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려고 하겠습니다. 물론 개 중에는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고 정의로운 개들이 있으며, 당신은 개들의 권리와 생명을 존중해 달라는 개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보기엔 개보다 멍청하고 더 큰 해악을 끼치는 인간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당신은 개와 인간의 편 중 어디에 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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