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탐정 홍길동 죽여주게 재밌는데... 물론 재미없다는 사람들도 이해가 간다. (역으로 곡성은 재미 없었는데, 재밌다는 사람들도 왜 그러는지는 이해가 간다)
2.
사실 [늑대소년]이 특이케이스였던 거지, '조성희 월드'가 보편적인 한국 관객의 정서와 맞아떨어지기는 좀 힘들 것 같긴 하다. 하필이면 그 와중에 제작비 100억짜리에 B.E.P가 300만이라니... 150만 정도 들었다는데, 그중에 열렬하게 공감하는 50만 정도와 속은 100만 정도가 섞여있었다고 보면... 대충 맞을 듯.
조성희 감독이야 늑대소년 한 번 터졌을 때 이런 걸 꼭 해보고 싶었던 건 이해가 간다. 막말로 그 다음 작품 삐끗하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안 올텐데 큰소리 쳐볼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걸 한 번 해봐야지... [늑대소년]보면 순정만화 감수성도 있는 사람인데, 의도적인지 로맨스 싹 빼고 간 것 보면 결과는 각오했던 것 같다. (난 CJ가 이 시나리오를 컨펌 내준 것도 사실 의문인데, 조성희의 힘이 굉장히 셌거나, 아니면 시나리오 단계에는 고아라와의 로맨스를 깔아두고 편집에서 다 덜어내버렸을 수도. 이렇게 하면 고아라의 비중 없음이 설명이 된다)
3.
객관적으로 놓고 보면 [곡성]과는 개봉시기가 비슷하다는 것 외에는 전혀 비교될 부분이 없는 영화인데, 개인적으로 내 머리에선 자꾸 둘을 축을 놓고 비교하게 된다. 하나는 [로스트]의 번안, 다른 하나는 [씬시티]의 번안. 아역을 쓰는 방법. 미스터리를 감추는 방법, 드러내는 방법. 중의적인 의미에 대한 태도.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최대한 현실적인 리얼리즘 안에 감추는 연출과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더욱 비현실적으로 부풀려 과시하는 연출. 그러면서 역으로 연출력을 과시하는 자와, 화려한 미술 뒤로 숨는 자. 장르인데 장르인 척 하지 않는 자와 장르인 척 하지만 장르가 아닌 그 무엇인 자. 물론 나는 모든 부분에서 철저히 조성희의 편이다. 클라이맥스에 이제훈의 뒤로 트럭 헤드라이트가 비출 때 탄성을 지를 뻔 했다.
4.
개인적으로는 어떻게든 조성희가 사람들을 한 번 더 속여넘겨서 후속작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아님 CJ에서 미드스타일로 드라마화 시켜주면 좋을텐데... 라고 생각했으나... 이젠 다 틀린 일이 되어버린 듯. 조성희는 돌아오더라도 이젠 훨씬 더 사회화된 이야기로 돌아올 거고(영리한 사람이라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확신하진 못하겠다. 세상에는 딱 자신의 방식대로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법이니까) 한국영화계는 또 한 번 유니크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여러모로 조성희는 특이하게 시대를 잘못 타고난 감독일 수도. 너무 대자본의 시대에 태어나서 너무 마음껏 만들다보니 이런 걸 만들고 흥행에 실패하는 듯. 90년대 말쯤에 적당한 자본의 시대에서, 적당히 작가주의 하면서 [러브레터] 같은 걸 하나 터트리고, 이후에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같은 걸 찍었으면 한국의 이와이 슌지 취급 받았을텐데. 물론 그때 만들었으면 지금처럼 돈을 벌진 못했겠지.
5.
'홍길동'에 대해 대부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도술 쓰는 그 양반을 떠올리던데, 물론 막판에 거기에 살짝 맞춰주기는 했지만, 나는 처음에 '탐정 홍길동'이란 제목을 들었을 때부터, 그리고 이 영화가 씬시티 스타일의 변종 하드보일드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이 영화의 홍길동은 동사무소 증명서 예시에 적혀있는 홍길동, 즉 '무명(無名)' 혹은 'anonymous'의 의미가 훨씬 더 강하다고 보았다. 실제로 홍길동은 처음에 자신의 신분을 위장할 때 '등기과 직원'이라고 말하고, 마지막엔 '난 주민등록번호도 없는 사람이야'라고 한 번 더 강조해서 말한다. 근데 생각보다 이걸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었다는 건, 알아차릴 만한 사람들은 이 영화를 즐기기엔 너무 늙었고, 이 영화의 주요 소비층은 그걸 알기엔 너무 어리다는 사실 때문일까. 아 저주받은 70년대 후반 출생들의 감수성이여. 왕가위와 이와이 슌지와 트레인스포팅의 시대는 짧았어라.
ps.
<씨네타운 19>의 평에 대해 한 마디;
영화평론가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그냥 좀 청취자 많은 영화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직장인들일 뿐이라, 그들의 평에 쓸데없이 큰 의미를 두는 건 지양하고 싶은데, 그래도 이 영화를 보고 "씬씨티가 있는데 이 영화를 굳이 볼 필요가 있냐?"라고 묻는 건 굉장히 무신경했다고 말하고 싶다. 차라리 "가위손이 있는데 [늑대소년]을 보는 게 의미가 있냐?"라고 말한다면 모를까. [늑대소년]은 진짜 가위손의 카피였다면(거의 [데이브]와 [광해] 정도의 비교가 가능하다) [탐정 홍길동]은 [남매의 집] -> [짐승의 끝] -> [탐정 홍길동]으로 이어지는 조성희 특유의 개성이 살아숨쉬는 작품이다. [씬시티]와는 이야기도 다르지만, 그보다 정서가 완전히 다른데 왜. 기법이 비슷하긴 하지만, 사실 그것 자체도 씬시티와 비슷할 뿐이지... 나는 오히려 CG라는 점만 제외하면 [Who framed Roger Rabbit?]같은 애니메이션 쪽에 더 가까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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