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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영화

버드맨 - 자의식으로 가득 찬

by 이어원 2017.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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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버드맨'은 자의식으로 가득 찬 영화입니다. 그리고 자의식에 가득 찬 영화에 어울리게, '원 씬 원 컷으로 찍은 것처럼 보이게' 연출된 영화입니다. 물론 원 테이크로 찍은 영화가 아니라는 걸 눈치채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카메라의 움직임은 절대로 끊기지 않지만, CG와 테크닉으로 이어붙인 지점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죠. 다만 이냐리투는 이러한 테크닉을 한 번 더 비틀어서 보여줍니다. 즉 원 테이크 연출과 연극의 구성을 결합시키는 것이죠. 카메라는 등장인물의 주위를 돌며 빙글빙글 보여주면서 그들의 갈등을 드러냅니다. 한 인물이 갈등하거나, 인물과 인물이 부딪치는 장면이 끝나면, 카메라는 이동하는데 이 카메라의 이동이 연극에서 막(ACT) 혹은 암전의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처음엔 음악도 이 막과 막 사이에만 삽입되며 시간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카메라의 흐름은 끊기지 않고 이동하지만, 그동안 시간은 카메라의 움직임과 어긋나 있습니다. 이른 바 원 씬 원 컷, 혹은 원 테이크 연출의 경우 극중의 시간과 리얼 타임을 일치시키는 연출을 보여주는데, 이냐리투의 '버드맨'은 의도적으로 그 둘을 빗겨나게 연출합니다. 이를테면 에드워드 노튼이 조명대에서 엠마 스톤과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봅니다. 정사 중간에 카메라는 이동하여 연극무대로 가는데, 그 순간 에드워드 노튼은 이미 의상을 챙겨 입고 연극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즉, 카메라가 이동하는 동안 시간은 상당히 많이 흐른 상태인 것이고, 이것은 연극의 막 또는 암전과 동일한 효과로 작용한 것이죠.

  

  원 테이크인 '척' 하면서 리얼 타임과 극의 시간을 빗겨나가게 하고, 동시에 현실과 환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극중의 연극과 영화와, 또 헐리우드라는 현실의 외연과 내연을 넘나드는 이냐리투의 연출은 현란하기 짝이 없습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블랙 코미디이면서, 몰락한 헐리웃 스타의 눈물겨운 감동 스토리이기도 하고, 동시에 여러 명의 인물들이 상황을 꼬여버리게 만드는 앙상블 극이기도 하고, 때로는 환타지입니다. 이냐리투는 '어벤저스'부터 레이먼드 카버까지, 롤랑 바르트부터 '트랜스포머'까지의 폭 넓은 레인지를 다 커버하는 영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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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말하지만, '버드맨'은 자의식으로 가득 찬 영화이고, 감독은 자신이 헐리우드의 바보같은 영화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감추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시스템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대신,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현란한 연출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얼마나 멍청한 짓을 하고 있는지 거울처럼 비춰줍니다. 하긴 그들의 사정 역시 우리와 크게 다를 것은 없습니다. 지금의 영화는 기괴한 시스템으로 만들어 집니다. 시나리오를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한 작가가 밤을 새워 극본을 써놓으면, 동네 아줌마와 백수들이 섞여있는, 이른바 '모니터링단'이 그것에 대해 '씬'별로 점수를 줍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재밌다'고 판단하는 점수가 높은 씬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씬은 버려집니다. 그것이 전체적인 맥락에서 왜 필요한지, 작가가 왜 그 장면을 집어넣었는지에 대해 그들은 얼마나 고려할까요?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돈을 버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물론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과 영화에서 '대중'으로 구성된 모니터링단의 의견이란 게 그들의 눈높이를 반영하고 있고, 그러므로 '돈을 버는 것'에 그들의 의견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의견이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 통제하는 창작자의 의견보다 우선되어야 할까요?


  실제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해봅시다. 한 방송 연출자가 있습니다. 그는 이 일을 하기 위해 수능을 쳐서 좋은 점수를 받고 대학의 신문방송학과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4년동안 공부를 해서 좋은 점수를 받았고, 운이 좋아서 다행히 방송국에 들어가서 방송을 만들고 연출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열심히 방송을 만들었습니다. 열심히 기획하고 고민하고 촬영하고 편집하면서요. 그런데 어느날 회사에서 동네 아줌마들로 구성된 '모니터링단'이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 모니터링단의 아줌마들은 방송을 보고 의견이라는 것을 남깁니다; 진행자의 빨간 옷이 맘에 안 들어요. 빨간 옷 입히지 마세요. 진행자가 살이 쪘어요. 그러지 마세요. 나는 저기 노란색 배경이 맘에 안 들어요.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으로 해주세요. 그런데 회사는 연출을 공부하고 방송을 전공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의 의견대로 방송을 하고 반영된 사항을 남겨라." 연출자에 대한 존중이요? 왜 그런 게 필요하겠습니까. 그들은 내 돈을 가지고 방송을 만드는 애들이지, 나한테 돈을 주는 호구가 아닌데.


  - 다시 말하지만, 현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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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현실과는 다르지만, 헐리우드는 확실히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것은, 확실히 그런 멍청한 방식이 돈을 버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마이클 베이는, 아마 중국 아줌마들이 대거 시나리오 모니터링에 참여했음이 분명한 '트랜스포머4'로 시리즈의 흥행기록을 다시 썼습니다. 이냐리투와 마이클 베이의 연출력을 놓고 비교해보면, 바보가 아닌 이상 '버드맨'의 연출력에 손을 들어줄 것이지만, 스튜디오는 아마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4'를 백만 배 쯤 더 사랑하겠죠. 이런 세상이 마뜩 찮은 우리는 이냐리투의 '버드맨'을 보고 리건 톰슨처럼 행동해 보지만, 다른 사람들은 타임스퀘어 광장을 벌거 벗고 걷는 사람을 대하듯 병신처럼 바라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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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스팅이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마이클 키튼은 한때 배트맨이었고, 에드워드 노튼은 인크레더블 헐크를 연기하고 연출했던 배우죠. 엠마 스톤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연인이었고, 갖다 붙이자면 안드레아 라이즈보로도 역시 코믹스가 원작인 '오블리비언'에, 나오미 왓츠도 예전에 '탱크 걸'에 출연한 적이 있죠. 아마 현실과 환타지가 교묘하게 교차하는 이 영화에서 이 캐스팅이 단순한 우연만은 아닐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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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이야기와 형식이 뒤틀리며 섞인 영화이다 보니 때때로 위태위태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 모습이 종종 드러납니다. 무대와 대기실 등 극장 내만 오가던 카메라의 움직임이 거리로 세상으로 확대된 후가 특히 그렇죠. 시치미를 뚝 떼고 원 테이크인 척 하던 태도를 버리고 - 카메라의 움직임은 여전히 끊기지 않지만 - CG와 트릭을 드러내고, 이야기를 휘젓고 다니던 에드워드 노튼은 어느샌가 무대 밖으로 사라져버린 이후에, 중심을 못 잡고 몇 번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끝까지 고꾸라지진 않습니다. 사실 후반부의 현란함보다는 그냥 배우들이 불꽃튀게 부딪치는 초반이 더 좋았다는 생각도 들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영화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러니까, 꼭 보세요. 두 번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