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타니 코우키가<후루하타 닌자부로>를 처음 떠올리면서 <형사 콜롬보>를 참조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보입니다.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점점 달라지지만, 1기의 제1화와 제2화에 등장하는 후루하타의 행동은 영락없는 콜롬보의 그것입니다. 기본적인 추리방식도 다를 바 없죠. 속에는 영리한 추리를 품고, 어수룩한 척 하며 범인에게 달라 붙은 뒤, 범인을 짜증나게 해서 그가 실수하는 순간을 캐치해내는 거죠. 리처드 오스틴 프리맨이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에서 처음 발명해낸 도치 플롯(처음부터 범인을 밝히고 시작하는 추리소설 상의 플롯)이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된 것도 바로 이 콜롬보 시리즈입니다. 당연히<후루하타 닌자부로>도 도치플롯을 사용합니다.
2.
미타니 코우키는 노자와 히사시 같은 경우와 좀 다릅니다. 그는 연극에서 그의 커리어를 시작했고, 후에 TV와 영화로 진출한 뒤에도 연극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들을 써왔죠. <후루하타 닌자부로>가 꽤 유명한 시리즈이긴 하지만, 동시에 미타니 코우키의 커리어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추리물이기도 하죠. 그는 항상 독특한 캐릭터들을 유니크한 상황에 처박아 놓고 즐기는 코미디들을 주로 써왔습니다.<후루하타 닌자부로>는 그런 미타니 코우키의 개성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캐릭터들은 재미있고, 사연도 흥미롭지만 기실 추리물로써의 트릭이나 범죄구성 등은 상당히 많이 떨어집니다. 심지어 어떤 사건들은 도대체 왜 저런 뻔한 진상을 경시청의 다른 인물들은 의심조차 하지 않는지 어이없게 느껴질 때도 있죠. 이를테면 정당방위로 살인을 위장하려는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나, 사고로 위장하려는 시대극 배우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경찰이라면 당연히 의심해 봐야 하지만 후루하타를 제외한 주변인물들은 너무나 당연하게"의심의여지 없는 정당방위다"혹은"의심의 여지 없는 사고사"라고 단정지어 버리죠.<케이조쿠>에 등장하는 것처럼 복잡한 트릭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충분히 의심할만한 상황에서 말입니다. 대체 육교 위에 경찰이 있어야 한다고 피해자가 주장해 놓고, 정작 육교 위의 경찰 때문에 사건이 틀어지자 되려 화를 내는 상황에 고개를 숙이는 경찰이 있다는 게 말이 됩니까?
3.
미타니 코우키는 비교적 정통 추리규칙에 대해서는 공부를 많이 한 편입니다. 룰에 어긋나는 일들을 벌이지는 않죠. 그는 충분히 많은 정보를 시청자들에게 던져줍니다. 문제는 그가 그 정보들 중에 감추거나 돌려 말해야 될 부분마저도 그대로 던져준다는 것입니다. 추리물에 익숙해진 시청자라면 너무나 쉽게 알아챌 수 있죠.
물론<후루하타 닌자부로>의 매력은 추리과정보다는 후루하타와 주변인물들의 캐릭터에 있습니다. 사실 이게 일본식 추리물이 가장 잘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동시에 미타니 코우키의 장기이기도 하니까요. 1, 2화에서는 단순히 콜롬보의 번안이었던 후루하타의 캐릭터는 시간이 갈수록 엉뚱한 면을 더해갑니다. 결국 후루하타의 인기는 점점 더 올라가서 3기까지 제작이 되고 각종 스페셜들도 제작되게 되죠. 하지만 단순히 추리물의 팬의 입장에서 본다면 미타니 코우키가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트릭메이커와 함께 일했다면 어땠을까, 라고 생각해 봅니다.<탐정학원 Q>수준의 트릭 정도만 더해졌어도 드라마나 코미디 뿐만 아니라 추리물로도 볼만한 작품이 되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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