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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책

<코넌 도일을 읽는 밤> by 마이클 더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영화 중에 ‘다크 하프’라는 영화가 있다. 돈이 되지 않는 순수문학 소설을 쓰는 작가가 돈을 벌기 위해 ‘조지 스타크’라는 필명을 만들어서 대중 소설을 쓰고, 그 소설이 성공해서 많은 돈을 번다. 하지만 다른 필명으로 돈을 버는 것에 염증을 느낀 그는 조지 스타크라는 필명을 폐기하고, 다시 순수문학 작가로 돌아오기로 결심하는데, 갑자기 조지 스타크라는 존재가 살아나서 그의 주변 사람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다크 하프’는 자신의 문명(文名)에 부담을 느낀 스티븐 킹이 실제로 리처드 버크먼이라는 필명을 만들어서 6편의 소설을 발표한 것에서 착상을 얻어 쓰인 소설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의 줄거리는 그보다 셜록 홈즈와 코난 도일의 관계를 호러로 전환한 이야기에 더 닮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코난 도일은 홈즈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홈즈의 인기가 커져가는 것도 달가와 하지 않았다. 그는 진지한 역사소설을 쓰고 싶어했으며, 홈즈의 입을 빌려 끊임없이 ‘논리’와 ‘추리력’의 위대함을 설파했으면서도 말년에는 심령술에 빠져 죽은 사람과 대화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실제로 그는 홈즈의 인기가 부담스러워 홈즈를 죽였으며, 결국 제대로 죽이지 조차 못하고 그를 억지로 살려내야 했다. 코난 도일은 전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 중 하나를 창조했으나, 그것을 별로 즐기지도 않았고, 반가워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오늘 날 셜로키언이라 자칭하는 사람들은 셜록 홈즈의 위대함은 숭배하면서도 정작 코난 도일에 대해서는 ‘왓슨의 (그것도 실수투성이의) 문학적 대리인일 뿐’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전 세계에 위대한 추리 문학가들은 많지만, 그 중에 코난 도일만큼 유명한 작품을 쓰고도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작가가 있을까? 사람들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창작력을 칭찬하지, 포와로나 미스 마플에 감정이입하여 크리스티를 깎아 내리지 않는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필립 말로우보다 많은 팬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더쉴 해미트는 자신의 탐정 중 한 명에게는 이름조차 주지 않았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이론의 여지 없이 가장 위대한 탐정을 창조해 낸 작가는 어떤가? 코난 도일의 이름은 결코 셜록 홈즈보다 앞에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영원히. 조지 스타크가 그의 창조주를 죽인 것처럼.



마이클 더다는 비록 셜로키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일리언(셜록 홈즈가 실존하지 않은, 코난 도일이 문학적으로 창작해 낸 인물이라고 믿는, 한 마디로 정상인)의 입장에서 코난 도일의 스토리 텔링 능력을 정당한 문학적 평가의 장으로 끌어낸다(라고 말하기엔, 사실 개인적 취향의 추억팔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당할라나). 그는 물론 셜록 홈즈 스토리의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코난 도일이 그것 이외에도 많은 모험소설과 역사소설, 로맨틱한 이야기 등을 썼으며, 그런 소설 등에서도 반짝 반짝 빛나는 재능을 발휘하는 작가였음을 상기시킨다. 또한 그가 남긴 셜록 홈즈의 이야기들이 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그들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여러 놀이문화들을 만들어 냈는가도 함께 이야기 한다.

생각해 보면 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셜록 홈즈라는 인물이 이토록 우리를 흥분시키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가이 리치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영화로, 스티븐 모팻과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드라마로, 그리고 한국에서는 뮤지컬로. 우리는 화려하게 재창조 된 수많은 셜록 홈즈를 보면서, 그 소박한 첫 시작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마이클 더다는 그것이 모험과 SF로도 신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낼 줄 아는, 어떤 의사가 돈을 벌기 위해 써서 잡지의  크리스마스 호에 투고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잔잔한 필치로 이야기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셜록 홈즈를 읽고 있지만, 아주 가끔 조용한 밤에는, 셜록 홈즈가 아닌 코난 도일을 읽어보는 것도 괜찮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