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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 -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찝찝한 문제

by 이어원 2017. 3. 7.


1.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를 마지막으로, 인문학적 교양은 이상 감독에게 중요한 미덕은 아닌 것이 되었고, 피터 잭슨과 타란티노 같은 이른바 '영화 세대'들은 '장르 컨벤션이 윤리이고 리얼리티' 영화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코엔 형제나 박찬욱이 장르의 혼성교배와 영화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인문학적 사유 안에서 그것을 운영하고 있는 것에 반해, 타란티노 같은 경우는 철저하게 영화와 장르만으로 세계를 창조하는데, 놀랍게도 그것이 어느 것보다 리얼한 현실을 통찰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점에서 예로서는 타란티노의 영화보다 조스 웨던의 TV 시리즈인<버피 뱀파이어 슬레이어> 어울릴 같습니다. 저패니메이션의 미녀 고삐리 여전사 시리즈에 B 호러와 SF, X-File 풍의 오컬트 미스터리에 심지어는 코미디와 소프오페라 식의 멜로까지 정신없이 섞여 있는 드라마의 주제는, 경이롭게도 소녀가 정신적으로 성숙해가는 '성장드라마'입니다.<스크림>시리즈로 장르를 가지고 노는 것에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준 미국 양아치 케빈 윌리엄슨이 정작 <도슨스크릭>이라는 정통 성장드라마를 만들었다면, 엄격한 영국의 사립학교에서 성장한 조스 웨던이 미국의 싸구려 장르들을 잡종교배 시킨 시리즈를 만들었다는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없습니다


어쨌든 혼란스러운 잡종교배의 장르와는 달리, 버피의 성장드라마는 정통의 그것에 훨씬  가깝습니다. (어쩌면 <도슨스크릭>이나 <파티 오브 파이브>보다 훨씬 ) 아직은 친구들과 쇼핑하며, 남자들에 대한 잡담이나 나눠야 나이의 소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뱀파이어 슬레이어) 대한 압박감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그리고 이루어질 없는 연애에 슬퍼하고, 친구를 사귀고, 잃으며, 가족들을 잃고 스스로 서가는 법을 배워가지요. 그리고 마침내 버피는 시즌 5에서 명의 가장으로, 자신의 동생과 세계를 희생하는 법을 배웁니다. 뱀파이어와 괴물은 세계이고 인생이 바로 배드라는 메타포는 조스 웨던이 어떻게 장르를 인생과 리얼리티로 치환시킬 있는지 느끼게 해주죠


2. 


<
달콤, 살벌한 연인> 만든 손재곤 감독을 세상에 알린 <너무 많이 사나이>라는 단편이었습니다. 살인장면이 담긴 테입을 실수로 비디오 테입 수거함에 넣은 킬러가 테이프를 찾으려고 비디오를 빌려보다가 결국 영화감독이 된다는 기발한 내용의 영화는 알프레드 히치콕에게 바치는 오마쥬임과 동시에, 감독이 한국에서 무척 드문 '장르의 자식'임을 보여줍니다. 이후 <너무 많이 사나이> 속편<감독 허치국> 여전히 재밌었지만 동어반복의 함정에 빠진   보였구요. 하지만 그의 장편 데뷔작인 <달콤, 살벌한 연인> 장기인 장르의 혼성교배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대중과의 접점을 찾은, 유쾌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는 같습니다

 

3. 


손재곤 감독의 <달콤, 살벌한 연인> 장르의 혼성교배라는 도구를 가지고,  (적어도 한국적에서는) 연애의 가장 민감한 부분이라 있는 '여자의 과거' 파고듭니다


그러니까 서른이 넘도록 제대로 연애  못해본 남자가, (시쳇말로) '여기저기 굴러먹던 과거를 지닌' 여자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는가 문제이죠. 박용우가 최강희가 살인한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에게 말하는 대사를 가만히 음미해 보세요


"
내가 우발적으로 사람 죽인 거라면 어떻게  이해해 보려고 했어. 그런데 이건 한두 명도 아니고 도대체 명이야?"


위에 "내가 어쩌다 명이랑 거라면 이해할 있어. 요즘 추세도 그렇고 나이에 처녀라는 이상하지. 근데 완전히 굴러먹었구나?"라는 대사가 겹쳐지는 것이 저만은 아니겠죠?


물론 여자가 결혼한 여자라는 설정은  그것을 뒷받침 해줄 뿐이죠. 감독은 그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넘어갑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 정확히는 여자의 정체가 아니라 여자의 과거이며, 중요한  여자가 남자를 속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4.

 
홍상수가 만들었으면 찌질한 이야기가 되었을  주제를 가지고( 벌써 홍상수 감독의 주인공들이 어떤 대사를 것인지 머리 속에 그려집니다) 손재곤 감독은 로맨틱 코미디 위에 스릴러라는 전혀 다른 장르를 섞어가며 이끌어 갑니다


물론 그게 대단히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죠. 대충만 보아도 영화가 참조한 영화들의 목록을 서너 대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로맨틱 코미디와 하이스트 무비, 퍼즐 스릴러가 얽히는 지점은 <베리 배드 ><형사에겐 디저트가 없다>쯤에서, 그리고 살인과 유기에 대한 부분은  두말할 필요없이 <쉘로우 그레이브><바운드>에서 빌려왔군요. 그리고 <쉘로우 그레이브> <바운드> 히치콕에게서 멀리 나가지 않은 영화들이구요. , 냉장고 설정을 보니<프리즈 > 빼면 되겠군요. , 손재곤 감독의 장편은 그의 단편들에게서 그리 멀리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5.


나이 서른 먹도록 여자랑 키스 못해본 남자가 있습니다. 입으로는 여자의 과거가 중요하지 않다고 얘기하죠. 하지만 번의 여자경험도 없을 뿐더러, 소심하기 짝이 없는 21세기 초의 남자, 박용우의 캐릭터에게 그게 과연 단순한 문제일 리는 없습니다.



6.

 
영화가 내놓는 해답은 사실 교과서적입니다. 남자는 여자의 과거를 이해합니다. 하지만 연애감정이 있는 거기까지입니다. 아니 그것도 대단히 숭고한 연애감정이어야 가능하죠.  여자의 과거를 이해하고, 여자를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조금 중요한 감정이 필요합니다. 좋게 말하자면 '용기'라고 부를 수도 있겠습니까만, 그보다는 앞뒤 재지 않는 '' 가깝죠. 정도의 과거를 지닌 여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며, 당연히 정상적인 사고과정을 가진 남자라면 여자를 피해갈 입니다


, 박용우는 함께 어디로든 가자는 최강희를 거절합니다. 세상의 어떤 남자라도 제안에 응하기는 쉽지 않겠죠. 그리고 영화는 잽싸게 후일담으로 점프합니다


7. 

연애란 본디 그런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만나는 상대를 운명이라고 믿고, 그를 처음 만났을  시간이 멈췄다고 중얼거리지만, 그것은 자신이 스무 살이 넘어도 할리퀸 로맨스에 빠져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상의 남자들의 98% 어떻게 하면 여자에게 멋지게 보여서 여자를 침대로 데려갈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2% 예외는 게이들입니다

8.


하지만 여자들이라고 있습니까? 박용우는 여자들이 모두 혈액형과 별자리에 빠져 있고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탄합니다.(요새 말로 하자면 여혐 캐릭터쯤 될까요) 하지만 '무언가 다를 거라고 믿었던' 그녀조차 거리에 쏘다니는 흔한 여자애들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돼죠


하지만 시점에서 이미 중요한 것은 "그녀가 어떤 여자인가?" 아니었다는 겁니다결국 피와 살로 인간이라면,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비슷비슷한 인간이며, 당신이 허락한 당신의 남자친구나, 당신이 어저께 차버린 남자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당신이 상처받는  남자가 어떤 남자이냐, 아니라 당신이 남자를 다른 남자들과 다르다고 믿었다는 사실에서부터 시작하니까요.

 
9.

 
중요한 것은 인정하는 것입니다. 당신도, 나도 다를 없는 속물들이라는 것을. " 남자를 보는 순간 지구가 멈춘 같았어." 싸구려 순정만화의 대사입니다. 당신이 끌린 돈많고 좋은 집안에서 자라난 덕에 그에게 익어있는 매너이거나, 좀스럽지 않은 씀씀이거나, 혹은 유독 한 국에서만 명품취급받는 폴로 스타일 정장이거나우연히 타고나거나, 아님 어떻게 익히게 언변이거나, 하다 못해 넓은 실내공간을 자랑하는 그의 중형차입니다. 그가 당신에게 끌린 이유가 당신의 높은 지적수준과 맑은 눈동자 때문이 아니라, B 가슴인 것처럼 말입니다


10.

 
박용우도 결국 그런 보통 남자였습니다. 모든 후일담이 그렇듯이 그는 연애를 대단히 아름다운 첫사랑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하지만 기실  연애는 그가 그녀의 과거를 받아들이지 못했던그래서 깨졌던 추억일 뿐입니다. 그래서 가끔씩은 생각합니다. 진정한 성인의 연애란 같이 자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자는 것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알고 이해하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