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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S/모던 뱀파이어 슬레이어

모던 뱀파이어 슬레이어 창작노트(3) - 흑룡회



학교 다닐 때, 사실 저는 역사 과목을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뭔가를 노력해서 외운다는 게 상당히 귀찮았습니다. 하지만 역사적 이벤트를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로 듣는 건 좋아했습니다. 대개 역사적 팩트를 외우는 건 귀찮아 하면서 야사나 뒷이야기 같은 스토리 위주로 역사를 익히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다다르게 되는 목적지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음모론이죠. 


근현대사의 동아시아 음모론을 이야기 하면서 역시 흑룡회를 빼놓을 순 없습니다. 1855년에 태어난 일본의 우익 국수주의자 도오야마 미츠루(頭山 滿)는 ‘향양사(向陽社)’라는 우익 결사를 창설합니다. 이 향양사는 광역화되고 체계화 되면서 '현양사(玄洋社)'라는 조직으로 발전하고, 이 현양사의 소속원들이 주축이 되어 1901년 2월에 결성된 거대 우익조직이 바로 흑룡회로 통칭되는 black dragon society입니다. 현양사의 해외 담당 그룹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다른 기원으로는 천우협(天友俠)의 일원인 우치다 료헤이(內田良平) 등이 한반도, 만주, 시베리아 일대의 낭인들을 모아 결성했다는 설도 함께 전해지고 있습니다.

흑룡회의 창립자로 알려진 우치다 료헤이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흑룡회는 동아시아 역사적 음모론의 단골 손님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대해, 일본정부는 단순한 낭인 깡패 조직이 일으킨 불미스런 난이라고 해명했지만, 실은 흑룡회의 전신인 현양사의 조직원들이 국비지원을 받아 조직적으로 주도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도 음모론 속에서 흑룡회의 존재는 점점 더 커져서 이 조직의 구성원들은 단순한 불량배가 아니라, 영국이나 독일, 미국 유학을 다녀온 지사들이거나 과거 무사계급이었던 사람들로, 아시아 전역에서 일본정부가 염원하는 테러 활동을 시행해 왔다는 의혹도 받게 되죠.


MVS에서 흑룡회 소속의 구로가미는 일본군의 나카다 소좌에게 명령을 내리는데, 실제로 흑룡회는 일본의 군부 세력과 많이 협력하여 활동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특히 만주, 한반도, 중국 등지에서 대(對) 러시아 활동을 전개하고, 일본의 정치가들에게 강력한 외교 정책을 펴도록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러일 전쟁 당시에는 일본 제국 육군이 흑룡회 조직을 첩보, 사보타주, 암살 등에 활용하고, 흑룡회는 거짓 정보와 선전을 퍼뜨려 일본 군부와 관련된 심리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합니다.


이후에 전해지는 활약상을 보면, 흑룡회는 거의 그림자 정부 수준까지 성장합니다. 흑룡회는 한국 병탄에 앞장서고, 이를 위해 일진회를 배후에서 조종하였다고 합니다. 병탄 이후에는 만주와 일본 등지에서 한국인 학살을 주도하고 대동아 공영권을 주장하는 한편,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주류 정치단체로 성장하여 정부와 군부, 재계의 유력인사와의 밀접한 연계로 다른 초국가주의단체보다 훨씬 큰 힘과 영향력을 행사하고, 러시아에서 유럽과 미국은 물론 에티오피아, 터키, 모로코, 동남아시아와 남아메리카까지 활동영역을 넓혔습니다. 물론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과장인지는 확실치 않지만요.


여러 번 밝혔지만, MVS의 최초의 구상은 경성이라는 배경이 중심이 된 '모던 시티' 혹은 여러 친구들이 모여서 활약하는 '모던 보이즈'라는 제목의 소동극이었습니다. 뱀파이어가 등장하긴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비중도 아니었고, 사실상 경성을 배경으로 '아담스 패밀리'와 '프렌즈'를 적당히 섞은 톤에 '버피 더 뱀피이어 슬레이어' 식의 오컬트 느낌을 더한 형태의, 마치 팀 버튼 영화 같은 장르를 꿈꾸고 있었죠.

생각해보니까 ..팀 버튼에 흡혈귀에 코미디면.... 다크 섀도우네요?

하지만 드라마화가 고려되면서, '뭐야, 이 상업적으로 전혀 먹힐 것 같지 않은 장르는!'이란 반응을 얻게 되었고, 나름의 서사를 갖출 필요성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진념이라는 강력한 메인 빌런이 생기고 거대 서사를 꾸미게 되죠. 뱀파이어가 상해에서 경성까지 들어오는데, 거기엔 악의 음모가 관련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개연성을 찾는 과정에서 저는 흑룡회를 발견하게 됩니다.


처음엔 제가 그냥 임의로 일본의 비밀결사 하나를 꾸며낼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봤던 이현세 만화(사실은 야설록 스토리)에 보면 그런 류의 비밀결사가 꽤 많이 등장하거든요. 그런데 구태여 꾸며낼 필요도 없이 정확하게 들어맞는 단체가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특히 그림자 정부처럼 강력한 영향력을 행세하고, 해외에서 첩보와 심리전, 공작을 주로 벌인다는 게 좋았습니다. 정확하게 저한테 필요한 비밀결사였거든요. 대신 흑룡회가 끼어들기 시작하면서 일본의 군부와 연결되는 이야기가 필요해졌고, 그 고리를 위해서 나카다와 히키츠라는 캐릭터를 새로 만들어야 했지요. 그렇게 이 이야기는 더욱 더 거대해지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앞으로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MVS내의 흑룡회는 세계역사까지 움직이는 (프리메이슨? 로마클럽?) 엄청난 그림자 정부처럼 그려질 예정이지만, 실제의 흑룡회는 2차 대전 이후 사라졌습니다. 1946년 미국 점령당국의 명령으로 해산했거든요. 하지만 1961년 우치다 료헤이 작고 25주년제를 계기로 하여 가게야마 마사하루 등을 제창자로 한 흑룡구락부가 재결성 되었습니다.  


ps. 흑룡회 이야기는 제가 원래 7~8년전부터 기획안을 팔러 다닐 때 항상 끼워두는 설명이었는데 최근에 미스터 션샤인에 흑룡회가 등장해서 논란이 된 모양이군요. 제가 미스터 션샤인을 아직 못 봐서 검색하다가 처음 알았습니다. 미스터 션샤인 덕분인지 흑룡회 관련 포스팅도 꽤 많네요. 흑룡회는 비슷한 시기를 배경으로 거대 서사를 준비하게 되면 누구나 마주치게 되는 좋은 소재이긴 한데요. 김은숙 작가님도 [미스터 션샤인]을 꽤 오래 전에 구상하셨다고 하니, 제가 먼저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그냥 일개 웹툰 작가인데요. 김은숙 작가님이 먼저라고 하시면 먼저인 거죠. 김은숙 작가님, 존경합니다. MVS 판권 사서 드라마로 만들어주세요. 주연은 김수현이나 박서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네이버 담당자님, 모던 뱀파이어 슬레이어 연관검색어에 미스터 션샤인 올려주세요. 아니다. 미스터 션샤인 연관 검색어에 모던 뱀파이어 슬레이어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