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제가 웹툰 스토리 작가로 데뷔하는, <모던 뱀파이어 슬레이어> (이하 MVS)의 연재가 시작 되었습니다. 토리코믹스라는 신생 플랫폼에서 연재 중이구요. 향후 정책의 변화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현재까지는 5회까지만 무료이고 6회부터는 유료로 연재 중입니다. 이러한 연재 정책에 대해서 저는 관여한 바가 없습니다. MVS는 스토리컴퍼니라는 웹툰 제작사에서 직접 제작하여 배급하고 있는 작품이고, 연재처나 연재 조건에 대해서는 현재 제작사에서 결정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할 말이 많지만 이 자리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애플 앱스토어,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토리코믹스를 검색하신 후 설치하시면
MVS를 보실 수 있습니다
어쨌든 MVS는 제가 스토리작가란 크레딧을 달고 최초로 세상에 소개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 이전까진 제 본명이 대표로 나온 (여러 사람들의 작품이 모인) 단편소설집 한 권이 제 이름이 붙어있는 유일한 책이었죠. (범위를 넓혀보면, 제 예명이 작사가로 나와있는 앨범 한 장이 더 있을 테구요) 20대 초반 대본소 만화 스토리 작가로 일하며 4개 정도의 작품을 작업했지만, 그 작품에서 제 이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을 뿐더러, 지금 저작권을 인정받고 있지도 못합니다. 실제 작업할 때에도 저는 제 위의 사수에게 원고를 넘겼을 뿐, 화백님들은 단 한 번도 만나뵙지 못 했습니다. 물론 그 화백님들이 직접 그리지도 않았을 테지만요.
그 이후에도 영화나 드라마의 기획이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긴 했지만, 흔히 말하는 작품이 '메이드'되는 기회는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MVS는 어쨌든 제가 이런 저런 이유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지 20년 만에, 처음으로 '메이드'되는 작품인 셈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 역시 만만치는 않았습니다. 처음에 가장 가능성이 높았던 것은 드라마화였는데, 제 생각에는 메이드의 거의 40% 정도까지는 접근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회사 쪽에서도 관심이 높아 한 3~4개월 바싹 작업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드라마든 영화든 80%,90%까지 작업이 진행되다가도 엎어지는 일이 다반사니까 어느날 갑자기 일이 완전히 백지로 돌아갔다 한들, 그리 실망할 일은 아니었겠죠. 제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화판에서 그렇게 엎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면역이 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도 웹소설 등 다양한 형태로 이 'idea'를 하나의 완성된 'work'의 형태로 'made'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지금의 형태로 나타나기까지는 무려 8-9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덕분에 최초 구상시에는 완전 신선했던 이야기가, 지금은 흔하고 낡은 기획이 되어 버렸죠. 그만큼이나 이 프로젝트는 생각보다 많은 세월과 노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블로그의 공간을 빌어서, MVS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현재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됐는지, 일종의 '작업기'를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사실 이 블로그 역시 원래 이 작업기를 쓰기 위한 공간으로, 처음 공모전에 당선되었을 때 만들었습니다. 처음에 리뷰를 한두 달 정도 올리다가 연재가 시작되면 본격적으로 작업기를 연재할 생각으로 블로그를 만들었는데 연재가 늦어지는 바람에 중간에 블로그를 잠시 유기해 두었다가, 이제야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직장인과 작가,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 아이의 아빠로서 육아와 가사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숨막힐 정도로 바쁘다, 할 것은 아니겠으나 어쨌든 여유가 넉넉하지 않은 제가 구태여 시간을 들여 이러한 작업기와 후기를 기록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MVS를 즐기고,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을 위해서입니다.
MVS는 최대한 쉽고 재밌게 즐기도록 기획된 오락물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방대한 스케일과 설정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원래 제가 처음으로 쓴 초고에는 역사적인 설정과 설명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만, 웹툰화 되는 과정에서 제작사와의 논의를 통해 최대한 설명적인 부분은 배제하는 방향으로 각색되었습니다. 물론 스토리가 진행되어 가면서 제가 고집을 부린 부분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경우는 협의를 통해 삭제하거나 생략되었기 때문에, 제가 원하는 만큼 충분한 설정과 설명을 작품 안에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웹툰의 제작사는, 독자들이 생각하게 만들거나 무거운 주제의식을 담는 것에 대해 알러지 수준의 반응을 보입니다. 최대한 쉽게, 전개는 최대한 빠르게, 어려운 이야기는 생략. 주제의식은 쉽고 폼나는 몇 마디 대사로만. 저는 오히려 이런 것이 웹툰의 독자들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작품을 하는 이유는 물론 돈을 벌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바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는 많은 웹툰 독자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교양을 가지고 있으며, 진지한 이야기라도 재밌는 방식을 통해 이야기를 건네면 충분히 여러가지 이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사고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것에서 지적인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MVS는 웹툰화 되는 과정에서 그러한 부분들을 꽤 많이 거세 당했습니다. 때문에 MVS를 즐겨 보시면서 혹시라도, 더 깊이 당시의 이야기를 알고, 공부하고, 나누시기를 원하는 독자들을 위해 이러한 시도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두번째는 저처럼 작품을 쓰고 있는, 또 쓰기를 원하는, 많은 작가들/작가 지망생들을 위해서입니다.
저는 생각보다 꽤 일찍, 공인된 곳에 의해 재능을 인정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써서 발표하는 작업을 꽤 어린 나이부터 시작할 수 있었고, 그것으로 약간의 돈을 벌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일찍 시작한 만큼 일찍 싫증이 났고, 피로감도 일찍 찾아왔습니다. 인정받은 제 재능에 비해 생각보다 돈은 쉽게 벌리지 않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건 더 힘들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별로인 작품들은 인기도 얻고 돈을 많이 벌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실력보다는 인맥으로 출판을 하고, 작품을 메이드 하고, 그것이 돈과 홍보에 의해, 혹은 운에 의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에 염증을 느꼈고, 한동안 이런 일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직장도 이러한 재능과 상관없는 곳을 택해서 일을 했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이쪽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카페나 동호회에 가입하면서, 글을 쓰기를 바라고,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제 생각보다도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너무 어린 시절에 재능을 공인 받았고, 사실은 글을 쓰면서 한 번도 '실력이 부족하다'거나 '글을 쓰는 게 힘들다'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글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저에게 글과 이야기란, 솔직히 손쉽게 돈을 벌고 인기를 끌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한켠엔 어쨌든 돈을 벌지 못해도 어쨌든 자신의 이야기를 남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다만 그 '열망'이 너무 앞선 나머지, 그들이 하나의 아이디어만 가지고 작품을 시작하고 그것을 성급하게 발표하고, 그러다가 최초의 아이디어의 신선함에 대해 염증을 느끼기 시작하면 너무 쉽게 작품을 포기해 버리는 모습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저 역시 비슷한 과정을 여러 번 겪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작가일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 꽤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그걸로 이야기를 써보는 게 어떠냐?"라는 말을 합니다. 물론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중에 대부분은 좋은 아이디어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원래 대부분의 작가들은 그 '좋지 못한' 아이디어에서 작품을 시작하기 마련입니다. 작품을 써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본인이 아무리 그럴 듯하고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디어라고 하더라도 막상 짧은 단편 하나를 쓰기엔 턱도 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마저도 대부분은 남들이 이미 한 번쯤 생각해 보았거나, 그 생각한 것의 작은 변형이거나, 아니면 남들이 생각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구린 것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게 아닐 확률이 - 그러니까 진짜 기가 막히고 좋은 아이디어여서, 아이디어 하나만 가지고 작품의 모든 문제가 풀릴 확률이 - 로또 당첨보다 훨씬 낮은 확률로 존재하고 있기는 할 것 같습니다. (저도 확신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런 행운이 지금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을 확률이 압도적이라는 거죠.
아이디어는 하나의 불씨일 뿐입니다. 작가는 그 작은 불씨를 큰 불로 만들기 위해 입으로 바람을 불고, 지푸라기를 밀어 넣고, 풀무질을 합니다. 이게 크고 강한 불이 되어 독자의 마음이라는 강철을 녹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 과정이 창작이고 집필이며, 따라서 이것은 어떻게 보면 대단한 두뇌의 작용이 아닌 노동에 가깝습니다.
예전의 저는 창작이 노동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저는 꽤 괜찮은 재능이 있었고, 노동보다는 잔재주와 요령으로 그 노동의 흉내를 내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저 역시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 아이디어가 대단한 것인양 생각하며 최초의 아이디어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서 준비 없이 작품에 들어가기 일쑤였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권태기를 겪었습니다. 다만 남들보다 약간 특출났던 재능이 그나마 아주 망치는 일 없이 작품을 덮어내도록 눈속임을 가능하게 해주었을 뿐입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예전의 재능 충만한 젊은이가 아닙니다. 나이는 들었고, 예전 알량한 재능으로 얻었던 몇 개의 커리어는 이제 더 이상 이 바닥에서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MVS는 다시 제 커리어를 시작하는 첫 작품입니다. 그리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 프로젝트는 제가 쉬는 기간동안, 여러 번의 장르 컨버전을 겪으면서 다양한 형태의 담금질을 겪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최초의 작은 아이디어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하나의 메이드된 작품이 되는가, 에 대해 처음으로 천천히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헐레벌떡 시작해서 마감에 시달리고 연재하다 보면 어느새 완결되고 그 다음엔 너무 고생해서 저건 쳐다보기도 싫어, 하는 패턴의 반복이었거든요.
이곳에선 MVS 최초의 아이디어부터 그 아이디어를 배리에이션하고, 조직화시키는 과정에서 어떤 자료조사를 하고, 어떤 주제의식을 담으려 애썼는지를 기억나는 대로 정리하고 써보고자 합니다. 단순히 MVS의 독자라면 이곳의 컨텐츠를 통해서 MVS의 감춰진 의도와 재밌는 정보,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고, 만약 웹툰이든, 웹소설이든 어떤 이야기를 창작하기를 원하는 분이라면, 하나의 작은 아이디어가 거대한 스케일의 이야기로 구성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MVS를 사랑하시는 여러분 모두, 재미있게 MVS의 뒷이야기를 즐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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