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10.11에 쓴 글
スラムダンク, あれから 10年後 -
*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원작의 이름을 그대로 따르되, 친밀도를 생각하여 한국 번역판의 이름을 괄호 안에 =으로 표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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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의 도톰보리 하천 곁으로 커다랗게 그려진 용을 따라 킨류라멘이 있는 건물 옆쪽의 골목길로 접어들면, 10평도 채 되지 않는 공간의 작은 이자까야(선술집)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무로 만든 발을 치우고 들어가면 겨우 2-3사람이 앉을 만한 탁자와 의자가 여남은 개 놓여있고, 흰옷을입은 사람 좋아 보이는 주방장이 오코노미야키와 고깃국물을 잘 우려낸 라멘을 정종과 함께 팔던 그곳에서, 오사카 답지 않게 몹시 추웠던 겨울날, 우리 세 사람은 우연히 만났다. 우리 세 사람이란 나와 도수 높은 안경을 낀 안자이(安西)라는 대학원생, 그리고 정체를 알고 싶은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 키가 크고 머리가 짧은 한 사내를 말하는 것이다.
먼저 말을 주고 받게 된 것은 나와 안자이라는 대학원생이었다. 함께 오코노미야키를 나누어 먹으며 그렇고 그런 자기 소개를 끝냈을 무렵, 나는 안자이라는 사람이 도쿄에 적(積)을 두고 있는 명문 대학의 대학원생이며, 부잣집의 장남이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그도 내가 이곳을 한 번도 벗어나 본 적 없는 스물다섯 살의 오사카 토박이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알게 되면서 무엇보다 반가웠던 건, 둘 다 농구광이라는 사실이었다.
마침 술집 한 쪽에 놓여있는 미쯔비시의 14인치 구형 텔레비전에선 BJ리그의 중계가 한창이었다. 오사카 에베사와 다카마츠 파이브 어로즈의 대결이었는데, 경기는 완벽하게 에베사의 페이스로 끌려가는 중이었다. 특히 에베사의 에이스인 센도 아키라(=윤대협)는 193cm의 커다란 키에도 불구하고 포인트 가드 역할을 맡아 게임을 진두지휘하면서도 1쿼터에만 15득점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난 텔레비전에 시선을 꽂은 채 안자이에게 말을 건넸다.
"센도 아키라, 정말 대단하군요. 저 키에 포인트 가드 역할을 하면서 순식간에 15득점이라니."
안자이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했다.
"천재적인 놈입니다. 료난(陵南) 고교 시절부터 유명했으니까요. 물론 그 당시엔 인사이드에 우오즈미 쥰(=변덕규) 같은 좋은 센터가 있었고, 후쿠다 킷쵸(=황태산) 같은 스코어러도 함께 있어 더 좋은 팀을 이루고 있었지만, 사실 센도 아키라는 저렇게 혼자서 인사이드와 외곽을 휘젓고 다니는 모습이 더 매력적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을 듯 합니다. 그나저나 에베사가 지고 있으니, 안타까우시겠군요. 지명을 받은 사와키타 에이지(=정우성)가 미국 진출만 하지 않았어도 좋은 승부를 보여줬을텐데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사와키타 뿐 아니라, 그의 뒤를 이을 거라고 생각되었던 루카와 카에데(=서태웅)까지 모조리 미국으로 건너가 버리고 말았으니까요. 그들이 아직 일본에 남아있다면 BJ리그는 좀 더 볼만한 것이 되었을텐데 말이죠. 1 대 1 승부라면 귀신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사와키타와 인사이드와 외곽을 가리지 않는 센도, 그리고 한 번 불붙기 시작하면 아무도 멈출 수 없다는 루카와 모두 다 매력적인 선수들이죠. 물론 국가대표가 구성되면 모이겠지만, 이 선수들의 대결을 볼 수 없다는 점은 농구팬으로서 정말 아쉽군요."
그때였다. 우리 곁에서 술잔을 받아놓고 있던 한 사내가 말을 걸어온 것은. 한참 이야기에 빠져 있던 우리는 그 사내의 존재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터라, 그 사내가 갑자기 우리 앞에 불쑥 나타나서 말을 걸어오자 깜짤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사내가 앉아있을 때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그는 사실 190cm가 넘는 커다란 키를 가지고 있었고, 얼굴 생김새도 험상궂은 편인 데다가, 마침 얼굴에는 여기저기 상처들이 나 있어서, 처음에 우린 그가 야쿠자의 일원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런 오해에 걸맞게끔 그는 어두운 색 계통의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양복 역시 싸움에 휘말린 탓인지 먼지와 상처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겁을 잔뜩 집어먹은 우리의 우려와는 달리, 그가 우리에게 건넨 첫 마디는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농구... 좋아하십니까?"
안자이와 나는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내가 우리의 대화를 엿들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 같았다. 그리고 그는 분명히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술자리에서 만나 친해지는 것이 남자들의 방식이라고 해도 야쿠자를 연상시키는 외모를 가진 이름 모를 사내를 함부로 대화에 끼어들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설사 우리가 밤새 유쾌한 대화를 나눈다고 할지라도, 잠깐의 말실수로 등에 사시미칼이 박힌 채 도톰보리 천 위에 떠오를 수도 있는 것이다. 안자이 역시 마찬가지로 탐탁찮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사내는 우리의 마뜩찮은 표정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어느새 나무의자를 가져다 놓고 우리 옆에 앉으며 자신의 앞에 술잔을 가져다 놓고 정종을 따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저는 사쿠라기 하나미치(=강백호)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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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시는 데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하는 대결을 전 봤었거든요."
사내는 그렇게 운을 떼었고, 우리는 처음에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한참을 아무 말도 없이 사내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봤었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죠. 센도와 사와키타 두 명 다 저희가 이겼거든요."
"저희가 이겼다는 건.."
"저와 루카와... 아니, 우리 쇼호쿠(湘北)가 말이죠."
그때였다. 갑자기 안자이가 큰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서는 것이었다.
"사쿠라기! 맞다! 당신이 바로 그때의 사쿠라기였군요!"
어찌나 안자이의 목소리가 컸던지 그 작은 술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쳐다볼 정도였다. 그의 갑작스런 포효에 나 역시 깜짝 놀라 그를 돌아봤지만, 그는 그런 것따윈 상관하지 않았다. 아마 돌아가신 부모님이 다시 살아 돌아오더라도 그런 반응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머리가 검은 색이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진 없죠. 어차피 10년 전의 일인 걸요."
나는 도대체 이게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어 안자이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제서야 겨우 흥분에서 벗어난 안자이가 내게 천천히 그의 정체에 대해서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사와키타 에이지가 속해있던 산노공업(山王工業) 고등학교에 대해 들어본 적 있죠?"
"예.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대단한 농구명문이죠."
"지금에야 고등학교들의 실력이 거의 평준화 되었지만, 10년 전만 해도 산노공업 고등학교는 거의 무적군단이었습니다. 전국대회 우승을 밥먹듯이 하는 것은 물론이고, 산노공업이 고등학교 팀과의 경기에서 진다는 것은,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시니어 리틀야구 팀과의 경기에서 지는 것만큼 불가능한 일이라고 믿어지던 시기가 있었어요. 1990년부터 1996년까지, 7년 동안 산노공업 고등학교의 전적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잘 모릅니다."
"108승 1패입니다. 그런데 그 1패가 바로.."
"쇼호쿠에게 당한 패배라는 거군요."
"예, 결승도 아니고 2차전이었죠. 아무도 산노공업이 패배할 거라 믿지 않았는데... 그리고 여기 있는 이 사쿠라기 씨가 그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었었죠.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루카와 카에데의 어시스트를 받아서요."
"루카와와 한 팀이셨던 거군요."
"예. 얼마 전에 한 산케이 스포츠가 뽑은 '일본 스포츠史의 기적같은 승리 50選'에도 들어갔던 경기인데... 그러고 보니 그때 그 멤버 중에 지금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수는 미쯔이 히사시(=정대만) 정도로군요. 아카기 타케노리(=채치수) 선수는 부상으로 은퇴했고, 미야기 료타(=송태섭)는 애초부터 프로에 맞지 않는 하드웨어 때문에 미지명... 그리고..."
그제야 안자이는 다시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렇다. 안자이는 그에게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최강의 팀을 꺾었던, 그 빛나는 결승골을 넣었던 당신이 왜 야쿠자처럼 얼굴에 상처가 가득한 채 찢어진 양복을 입고 혼자서 외로이 오사카에서 술을 마시고 있느냐고.
"저는 2학년 때 농구를 관뒀죠."
사내는 씁쓸한 듯 웃음을 지으며 술잔을 입으로 가져간다.
"지금은 훗카이도 쪽에서 조그만 잡화점을 하고 있습니다. 농구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죠."
"그럼 오사카에는 어쩐 일로..."
"아는 사람의 결혼식이 있어서요."
"아, 예..."
"아카키 선배의 여동생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웃긴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제 첫사랑이었습니다. 물론 중학교 때 아무 생각 없이 여자애들한테 대쉬했다가 차인 게 50번은 됩니다만.... 정말로 진지하게 좋아했던 건 그녀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럼... 그 상처와 옷은..."
"예전에 농구할 때, 제가 유명한 악동이었던 건 아시죠?"
"예, 기억합니다. 빨간색 머리를 하고 코트에 나타나서 거침없이 행동하곤 했죠."
"오늘 오랜만에 악동짓을 했다가 아카키 선배한테 많이 혼났죠. 꼭 예전으로 돌아간 것처럼요."
사내는 다시 한 번 정종잔을 채우고, 또 비웠다.
"하루코(=채소연)의 결혼식을 망쳐놨거든요."
#.
처음 저에게 농구를 좋아하냐고 물어본 것도, 제가 농구를 하게 만든 것도 모두 하루코 덕분이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여자애들이 그렇듯이 하루코는 저에게 이성으로서의 감정은 없었고, 루카와를 좋아하는 어린 소녀일 뿐이었죠. 하지만 그땐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도 고마운 일이에요. 제가 농구를 알게 되고, 또 농구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줬다는 점에서 말이죠. 모두가 기초도 없는 망나니에 사고뭉치라고 욕할 때조차 하루코는 제 편이 되어줬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아카기 선배에게 "농구부를 구할 구세주가 될지도 몰라"라고 말을 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눈물이 날 정도였어요.
그녀 덕분에 전 제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실 산노공업과의 경기에서 등을 다쳤었거든요. 감독님은 마지막 순간에 저를 빼려고 마음 먹었고, 제가 코트에 나가는 것을 모두 말렸습니다. 만약 제가 그때 그 말을 따랐더라면 -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겠습니다만 -아마 그 날의 기적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산노공업 고등학교는 계속해서 무패의 기록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산케이 신문에 기록될 명승부도 이루어지지 않았겠죠. 물론 그때 나가지 않는 편이 더 현명한 결정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전 그 부상 때문에 농구를 관둘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제가 농구를 계속 했더라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세계대회에 나갈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때 전 생각했었어요. "내 인생이 가장 빛나던 순간이 언제일까, 라고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언제라고 답해야 할까?" 대답은 바로 나오더군요. "바로 지금이다!"라구요.
결승골을 넣고 관객석을 보았습니다. 하루코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확신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농구를 관두게 되어도, 두 번 다시 농구공을 잡지 못하게 되어도, 아니 평생 반신불수가 된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구요. 정말입니다. 지금 제가 농구와 상관없이 가난한 잡화점 주인으로 살고 있지만, 전혀 후회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내가 진심으로 좋아한 첫번째 소녀입니다. 그녀에게 그런 감동을 주었습니다. 내가, 아니, 우리가 말이죠.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정말입니다.
갑자원의 우승을 첫사랑 매니저에게 선물한 에이스의 기분을 아시나요? 그때 제가 느꼈던 감정이 그것보다 더 크면 컸지, 절대 모자르지는 않을 겁니다. 예, 전 후회하지 않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우린 그 다음 경기에서 큰 점수차로 패했습니다. 그리고 제 몸에 이상이 발견된 것도 그때부터였죠. 탈락 직후부터 재활을 위해 애를 쓰긴
했죠. 재활도 그럭저럭 잘 되었습니다. 문제는 한 번 잃어버린 재능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제가 깨달아 버린 겁니다.
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농구를 시작했습니다. 산노공업과의 경기라고 해봐야 농구를 시작한지 채 반 년도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죠. 어린 시절부터 농구를 접하면서 길러야 하는 센스 같은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저는, 무조건적인 연습과 실전을 통해서 제 몸이 완벽하게 반사적으로 반응하도록 제 자신을 훈련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기 내에서의 약점은 타고난 운동량으로 커버했구요. 하지만 재활은 그렇게 빠른 시간동안 급속하게 훈련시킨 제 몸의 기억들을 모두 앗아갔습니다. 근력을 늘리는 것은 꾸준한 운동으로 가능했습니다만, 한 번 잃어버린 감각을 다시 찾는 것은 재활과 운동만으로는 불가능했습니다. 실전을 익혀야 하는데, 한 번 부상을 알아버린 몸은 예전처럼 강한 운동량을 견뎌내지 못했습니다. 조금만 무리해서 움직여도 죽을 듯한 고통이 찾아왔죠. 예, 고집이 센 저였었지만 더 우길 수는 없었습니다. 해답은 하나, 그만두는 것 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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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마치 숨을 쉬지 않는 듯, 단숨에 거기까지 이야기를 마치고는 오코노미야키를 한 조각 집어 입에 넣었다. 별 것 아니라는 듯 표정은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난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세 사람은 잠시 동안 아무 말도 없이 앉아있었다.
이윽고 그 침묵을 다시 깬 것은 안자이였다.
"그런데, 농구를 관둔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물론입니다. 전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남자도 저보다 빛나는 소년기를 가질 순 없었을 것이라구요."
"그리고 아카기 양을 원망하는 것도 아니라고.."
"예."
"그런데 왜 아카기 양의 결혼식을 망쳐놓으셨습니까?"
"옛 말에, 소녀는 소년에게 꿈을 꾸게 한다, 는 말이 있죠."
"예."
"그 말이 어떻게 끝나는지 아십니까?"
"하지만 소녀가 여자가 되면 소년의 꿈을 짓밟는다..."
사내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앞에 놓여진 잔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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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를 관두고 학교를 졸업한 뒤, 전 훗카이도로 이사를 갔습니다. 성적도 좋지 않았고 별다른 특기도 없던 저는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거든요. 마침 훗카이도에 사는 먼 친척뻘 아저씨가 와서 가게 일을 도우면, 나중에 싼 값에 가게를 인수하게 해주겠다고 했고 전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
그 이후로 하루코와는 가끔 편지로만 연락을 하고 지냈습니다. 공부를 잘했던 하루코는 와세다에 진학을 했고, 그곳에서 남자친구를 만났죠. 법학과에 다니는 수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고위직의 관료로 출세할 수 있는 능력은 모두 가지고 있는 남자라는 소리를 들었죠. 하루코는 그 남자에게 푹 빠져있었습니다. 점점 편지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마침내 답장이 오지 않게 되었지만, 역시 그것 때문에 하루코를 원망해 본 적은 없습니다. 편지에서 느꼈지만, 하루코의 생활과 그녀가 하는 말과 단어들, 그리고 그녀의 관심사 모두가 저의 생활과는 아무 상관없이 멀어지고 있었거든요.
대학에 처음 갔을 때, 그녀의 편지의 대부분은 농구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항상 저의 가장 빛나던 시절의 기억을 자랑스럽게 펼쳐서 꺼내 보여주고는 했죠.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녀의 편지에서 농구이야기는 사라져가기 시작했습니다. 대신 친구들과 만나서 쇼핑을 하고, 옷을 고르고, 남자들을 만난 이야기가 그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죠. 저에게는 딴 세상처럼 멀고 먼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물론 저도 지금의 제 생활을 편지에 적어 보냈습니다만, 와세다 대학의 여대생에게 훗카이도의 잡화점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점원의 생활이 그다지 큰 매력이 없었으리란 것은 짐작할 수 있죠.
그래도 전 그녀의 청첩장만은 받을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녀의 결혼소식을 들은 것은 몇 명을 거쳐서 들은 것 뿐이었죠. 솔직히 말해서 결혼식에 가야 하나 많이 망설였습니다. 전 멍청하고 고집이 센 놈이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뭔가 제가 환영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예감 같은 게 들고 있었거든요. 농구를 하던 시절이라면 그런 생각은 전혀 할 수 없었을텐데 - 그때 저는 정말 막 나가던 놈이었으니까요 - 가게의 점원으로 일을 하면서 발달된 눈치가 어느 정도는 소용이 있었나 봅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전 그래도 제가 그녀의 결혼식에 참석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쨌든 그녀와 저는 삶의 가장 소중하고 빛나던 순간을 함께 한 '팀'이었으니까요. 물론 그녀에게는 미국에 있는 루카와가 와주었으면 제일 좋은 선물이 되었을 테지만, 그 얼음장 같은 인간이 그런 배려가 있을 리 없죠. 결국은 또 제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죠.
예, 그게 저의 가장 큰 실수였습니다. 저는 제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이 산노공업과의 경기였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하루코 역시도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농구 경기에 열광하는 여고생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에게 산노공업과의 경기는 그냥 지나간 짧은 추억 그 뿐이었던 거죠.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그녀에겐 그것보다 거대한 일본의 관료조직에서 촉망받는 엘리트 인재와의 결혼이 수만 배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런 중요한 순간에 훗카이도에서 날아온 험상궂은 촌놈과의 인연이 들통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겠죠. 그쪽 집안의 어른들은 가뜩이나 그녀의 오빠가 무식한 운동선수 출신이라는 것을 업신여기고 있는
터였습니다. 아마 제가 아니라 루카와가 한국에 있었더라도 그 결혼식장에 초대받지는 못했을 겁니다. 하물며 저는... 초대도 없이 나타난 저를 끌어낸 것은 아카기 선배였습니다. 그 옛날 농구코트에서 망나니처럼 뛰어다니던 저를 끌어내듯 이 선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저를 결혼식장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여전히 제멋대로 행동하는 엉망인 놈이라고 욕을 해대었죠. 저는 선배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루코를 만나서 잠깐만 얘기를 해보겠다고 사정 사정을 했지만, 제가 그러는 것은 하루코를 더 힘들게만 만드는 일이라고 선배는 얘기했죠. 그래서 저는 이번에는 하루코의 남편을 만나서 하루코를 잘 부탁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남자 대 남자로 이야기가 통할 거라고 믿었으니까요. 예, 적어도 하루코가 택한 남자는 그 정도의 그릇은 될 거라고 생각 했습니다.
아카기 선배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하루코가 택한 남자는 관료직에 진출하기 위해서 어렸을 적부터 한 눈 한 번 팔지 않고 달려온 남자였습니다. 농구 전국대회는커녕 갑자원에 참가하는 학생들조차 어리석다고 비웃는... 내가 지금 그곳에 가봤자 얻을 것이라고는 경멸 밖에 없다고 선배는 이야기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제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카기 선배에게 얻어 맞고, 옷이 엉망이 되고, 하루코의 얼굴은 보지도 못한 채 결혼식장에서 쫓겨나고 나서야 저는 지금의 제가 고등학교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그녀와 저는 다른 세상에 속한 사람이 되었고, 내 소년 시절의 꿈과 가장 빛나던 순간은 기억 외의 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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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곳에서 얼마나 더 많은 술을 마셨는지 모르겠다. 사내의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린 근처의 여관에 방을 세 개 잡고 각기 따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난 다른 방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두 사람을 마주칠 일은 내 생에 다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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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슬램덩크를 다시 보고, 나이 서른에 산왕전에서 다시 한 번 울다. 문득 우리가 사랑했던 많은 소녀들이 산왕전을 보고 감동할 줄도 모르는 변변찮은 남자들과 연애하고 결혼하고 그들의 아이를 낳았음을 깨닫다. 그리하여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하다.
*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표면적인 이야기는 김승옥의<서울, 1964년 겨울>을 상당부분 인용하거나 오마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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