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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코난 - 베이커 가의 망령>을 기를 쓰고 보려 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연애시대>의 원작자인 노자와 히사시가 이 영화의 각본을 썼다는 사실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의 이유는 셜록 홈즈와 잭 더 리퍼의 대결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었죠.
결과는요? 둘 다 조금씩은 실망스러운 느낌입니다. 노자와 히사시는 우리에겐<연애시대>의 원작자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파선의 마리스>로 에도가와 란포 상도 수상했고, 미스테리적 복선이 깔린<잠자는 숲>과 수사물인<얼음의 세계>의 작가이니 추리물 자체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명탐정 코난>의 세계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 보죠.<베이커 가의 망령>은 <명탐정 코난>의 극장판 중 6번째 작품이자 노자와 히사시가 각본을 쓴 유일한 작품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1기부터 9기까지, 6기 극장판인<베이커 가의 망령>을 제외한 나머지 각본은 후루우치 카즈나리에 의해 쓰여졌다는 사실입니다. (10편과 11편은 카시와바라 히사시 각본) 즉 다시 말하자면<베이커 가의 망령>은<명탐정 코난>의 극장판 중에 이질적인 이야기 구조를 가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죠.
실제로<베이커 가의 망령>은 가상현실이라는 SF적 소재를 가져온 반면, 전통적인 탐정물, 특히<명탐정 코난>의 가장 핵심적인 장르 컨벤션이라 할 수 있는 범인 찾기와 트릭 풀기에 인색한 편입니다. 2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범인을 모르는 살인은 딱 한 건 벌어지는데, 그나마 시시한 트릭을 사용한 시시한 동기의 살인이죠. 특히 동기의 경우, 얼마나 시시했던지 애들 만화영화를 감동하며 몰입해서 보고 있던 제가 다 실망할 정도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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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코난>의 가장 기초적인 컨벤션이라 할 수 있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놀라운 트릭'과'알리바이와 증거, 그리고 범인 찾기'를 무시한 채, 노자와 히사시는 가상현실 상의 모험담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갑니다. 특히 가상현실의 아이디어는 아주 좋아요. 셜록 홈즈와 잭 더 리퍼의 대결이라니! 이것은 셜로키언들이 부딪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 중의 하나란 말입니다!
신학의 가장 근본적인 물음이 무엇일까요?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왜 이 세상에 불행도 함께 존재하는가, 입니다. 신이 전지전능하다면 당연히 불행도 없앨 수 있을테고,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면 불행도 함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도록 했을테니까요.
셜로키언이란 어떤 자들입니까? 신적인 존재 셜록 홈즈가 실제로 존재했으며, 코난 도일은 그저 그 신의 행적을 기록한 사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에게'믿지 않는 자들'은 비웃음을 가득 물고 질문합니다;
"대체 너희들의'셜록 홈즈 님'이 모든 사건을 해결하는 전능한 명탐정이었다면, 어째서 동시대에 활동한 잔혹무도한 살인마 잭 더 리퍼에 대해서 아무 것도 밝혀내지 못했는가?"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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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더더욱 아쉽게도<베이커 가의 망령>에서 셜록 홈즈는 딱 두 장면에 등장하며, 왓슨은 사진으로만 등장합니다. 외려 세바스천 모런 대령이나 모리어티 교수의 비중이 훨씬 큰 편이죠. 정말 견딜 수 없는 건, 노자와 히사시가 분명 셜록학(學)을 상당히 연구한 것이 틀림없음에도 불구하고, 홈즈가 아이린 애들러에 대해 갖는 감정을 단순한 연애감정으로 치부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이들 영화에, 홈즈의 일생에 거친 복잡다단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아이린 애들러에 대해 그런 식으로 표현해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본 아이들 중에 나중에 셜로키언이 되어서 배신감을 느끼는 아이가 나타나지 않으리라고 과연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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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베이커 가의 망령>에서 노자와 히사시가 무시한 것은 단순히 아이린 애들러의 캐릭터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좀 더 근본적인 것에 대해 철저하게 무지한 채<베이커 가의 망령>을<명탐정 코난>시리즈에서 이질적인 존재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 노자와 히사시는<명탐정 코난>과<소년탐정 김전일>이 기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틀을 무시합니다. 바로'소년탐정'이란 서브 장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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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명탐정 코난>에 등장하는 소년탐정단을 보면서 베이커 스트리트 이레귤러즈를 연상합니다. (혹은 연상하도록 강요받습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베이커 스트리트 이레귤러즈는 홈즈의 잔심부름을 하는 거리의 아이들에 불과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거나 조사하는 일따윈 없었죠. 항상 홈즈의 지시를 받았으며, 심지어 심부름의 댓가로 돈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식 명칭도 없었던) 그네들이'베이커 스트리트 이레귤러즈'라는 이름으로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는 것은 오직 그들이 셜록 홈즈라는 역사상 최고의 탐정과 연관되어 있었다는 사실 뿐입니다.
오히려<명탐정 코난>에 등장하는 소년탐정단은 에리히 케스트너의<에밀과 탐정들>- 예, 소설 본문보다"저는 원래 남태평양의 식인종 소녀 페터질리에 대한 이야기를 쓸 예정이었고, 심지어 3장까지 써놓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지금 우리집 식탁 밑 받침대로 쓰이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작가후기가 훨씬 더 유명한 그 소설 말입니다 - 에 등장하는 소년들에 더 가깝습니다. 우연찮게 사건과 마주치고, 평범한 소년들이 팀 플레이로 협동해서 사건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말이죠. 이런 소년탐정단의 전통은, 물론 시리즈가 발전함에 따라 공식적인 경찰사건을 다루기도 하지만, 보통은 동네에서 벌어진 기괴한 일들 - 갑자기 사라진 고양이라던지, 이웃과 친하지 않은 괴노파의 과거 - 을 다루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것은 후에 완벽하게 장르화되어 '매거크 탐정단'시리즈와 같은 어린이 시리즈의 성공으로 이어집니다만, 이 이야기는 잠깐'하디 보이즈'까지 이야기 하고 이어서 하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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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탐정단'의 원형이 베이커 스트리트 이레귤러즈와<에밀과 탐정들>의 소년들이라면, 김전일, 신이치와 하쯔토리처럼 학생 신분을 가지고 실제 사건조사에 참여하여 경찰조차 깜짝 놀랄 추리를 펼쳐내는'소년탐정'의 등장은 훨씬 더 화려했습니다. 이'고교생 탐정'의 원형은 전세계적인 스타,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과 대결을 펼쳤고, 뤼팽을 잡으러 등장한 셜록 홈즈를 따돌렸으니까요. 심지어 등장한 작품도 모리스 르블랑의 최고작으로 손꼽히는<기암성>이었습니다.
이쯤되면 아시겠죠? 예, 그 소년탐정의 이름은 이지도르 보트를레(Isidore Beautrele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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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도르의 등장은 여러모로 김전일이나 쿠도 신이치와 비슷합니다. 장송 드 사일리 고등학교 수사학급(1902년 전까지 프랑스 고등학교의 최고학급)의 기숙학생인 수재이자, 학교에서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 실력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던 이지도르는 봄방학 중에 우연히"앙브뤼메지 사건"에 흥미를 느껴 신문기자로 변장하고 수사현장을 찾게 됩니다.
물론 어설픈 변장은 곧 경찰관에게 들키고 말지만, 가니말 경감도 깜짝 놀랄만한 추리를 해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죠. 심지어 그 이전에도 그의 추리실력은 재야에서 정평이 나 있었고, 경찰들과 협조하면서 뤼팽의 행적을 쫓는다는 점까지 많은 부분에서 후기의 소년탐정들은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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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시오, 형사반장! 당신이 있을 곳은 바로 여기라오! 내 장담하건대 무슈 이지도르 보트를레가 하는 말은 귀기울일 가치가 있어요... 내가 조사한 바로는 이 소년의 관찰력은 가히 신기의 수준이어서, 학교 내에서는 가니말 경감과 대등할 뿐 아니라, 저 멀리 셜록 홈즈와도 충분히 비교될 만한 명성을 갖추고 있다고 하오."
-<기암성>중 피욜 씨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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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아시는 이야기겠지만, 뤼팽 시리즈 중 셜록 홈즈는 세 작품에 등장합니다.<두 개의 탑>,<기암성>, 그리고<뤼팽과 홈즈의 대결>이죠. 하지만 그 세 작품에서 한 번도 홈즈는 뤼팽을 검거하지 못했고(가니말 경감도 뤼팽을 한 번 체포했었는데!), 코난 도일은 그것에 대해 몹시 기분나빠 했었다고 전해집니다. 모리스 르블랑은 의도적으로 셜록 홈즈(Sherlock Holmes) 대신 헐록 쇼움즈(Herlock Sholmes)라는 이름을 사용했구요. 때문에 셜로키언들은 뤼팽 같은 날건달과 홈즈가 대결한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물며 이지도르 같은 초심자 탐정에게 추리로 밀린 적도 없다고 믿고 있구요. 셜록 홈즈의 숙적은 오로지 모리어티 교수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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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도르 보트를레는 기암성에서 놀라운 활약을 펼쳐보임으로써 프랑스 전역의 스타로 떠오르게 됩니다. (역시 쿠도 신이치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소년의 활약은 거기까지입니다. 이후 모리스 르블랑의 어떤 소설에도 등장하지 않고, 아마 학교로 돌아가서 시험공부나 하면서 살았겠죠.
사실 이지도르의 등장은 추리소설계에 꽤 신선한 사건이었습니다. 이지도르는'원로 탐정'들이 가지고 있는 냉정한 분석 대신 사춘기 소년다운 감정으로 사건에 접근했습니다. 때문에 셜록 홈즈가 끝까지 뤼팽을 뒤쫓는데도 그를 도와 검거를 돕지 않고 심정적으로 뤼팽을 응원하면서 사건에서 손을 떼기로 결심합니다. 동시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영민한 사춘기 소년이야말로 닳고 닳은 원로 탐정들에 비해 뤼팽이 상대하기에 까다로운 상대가 아닐 수 없었죠. 하지만 모리스 르블랑은 뤼팽이나 가니말 경감 같은 캐릭터만큼 그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았나면, 기암성 같은 작가적 역량을 맘껏 발휘한 작품에서 엄청난 활약을 벌이게 만들어 놓고 이후로는 한 번도 활용하지 않았을 리 없죠. 도리어 이런'소년 탐정'을 가지고 재미를 본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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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스트레이트마이어라는 이름은 추리 문학계에 전혀 남겨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꽤 재미있는 존재이자, 이후의 추리문학계, 심지어는 대중문화계 전반에 대단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정말 정말 재미있는 것은 실제 미국인들조차 에드워드 스트레이트마이어라는 존재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에드워드 스트레이트마이어는 1890년부터 소년독자들을 위한 연재물이나 펄프 픽션을 쓰던 싸구려 작가입니다. 대단한 실력을 갖춘 것도 아니었고, 독창적인 이야기꾼도 아니었죠. 여느 펄프픽션 작가들처럼 대중문화와 유행, 그리고 독자들의 유행에 민감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그의 가장 뛰어난 업적은 1905년에 이루어집니다. 그는 스트레이트마이어 신디케이트라는 회사를 세우고, 직접 책을 쓰는 대신 수많은 유령작가들을 고용해서 자기가 만들어 낸 간단한 줄거리에 맞추어 대신 소설을 쓰게 시켰습니다. 그는 작가한테서 받은 원고를 자기 식으로 편집해서 다양한 필명들로 출판했고, 대신 작가들은 자기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 원고료를 일시불로 지급 받았구요.
그렇게 태어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하디 보이스, 예, 일명<용감한 형제>와<낸시 드류>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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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적인 작가이진 않았지만, 천재적인 장사꾼이었던 스트레이트 마이어는 1926년 아주 소박하고 단순한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에 문학계에는 추리소설이 한참 유행이었거든요. 어른들이 좋아한다면 아이들에게도 추리소설을 유행시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겠죠. 거기에 아주 아주 비즈니스적인 아이디어를 덧붙인 것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추리소설이라면, 당연히 눈높이를 맞추어 소년 소녀 탐정이 등장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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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형제>의 아이디어는 전형적인 소년용 모험물입니다. 아버지를 탐정으로 둔 두 형제가 전 세계를 무대로 한 사건에 휩쓸리고 그 사건을 놀라운 추리력으로 해결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프랭클린 딕슨이란 필명을 사용해서 발표된 이 소설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제가 읽은 것도 국민학교 때 한 출판사에서 아이들을 꼬시기 위해'탐정 무전기'와'탐정 쌍안경'을 사은품으로 내놓은<용감한 형제>시리즈 10권 세트였죠. (10권에 25,000원이었는데 당시 그걸 사기 위해서 부모님을 석 달 동안 졸라댔던 기억이 납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 KBS에서는<용감한 형제>의 TV드라마를 함께 방영했습니다. 후에<베이워치>에 출연하게 되는 파커 스티븐슨이 프랭크 역할로, 그리고 레이프 가렛과 함께 80년대의 청춘스타였던 꽃미남 가수 겸 배우 숀 캐시디가 조 역할로 출연했었죠. 재미있게도 제가"Surfin'U.S.A"를 처음 들었던 건 비치보이스가 아니라<용감한 형제>에서 숀 캐시디가 시청자 서비스로 부르는 노래 때문이었습니다. (전 그때 숀 캐시디가 가수인 줄도 모르고"조는 추리만 잘하는 게 아니라 노래도 엄청 잘 해!"라고 감동했
었죠)
<용감한 형제>가 성공을 거두자 에드워드 스트레이트마이어는 틴에이지 걸들을 위해서도 비슷한 캐릭터를 하나 만들었는데, 그녀가 바로 낸시 드류입니다. 역시 범죄에 휩쓸리기 쉬운 변호사 아버지를 가지고 있는 귀여운 10대 소녀 탐정이죠. 역시 별로 독창적이지 못한 캐릭터이긴 합니다만, 낸시 드류는 소녀 탐정의 대명사일 뿐더러 나름 초기 페미니스트들의 연구과제로도 각광을 받았었죠. 그녀가 가장 최근에 등장하는 극장판 영화는 2007년에 제작되었고, 인터넷을 뒤지면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만, 그렇게 재미있는 편은 아닙니다. 엠마 로버츠는 예쁘긴 합니다만 18살 치고는 너무 어려보이는데 화장은 또 진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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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스트레이트마이어의 유산은 크게 두 가지 부분에서 아직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당연히 커다란 방향은 현재 헐리우드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스트레이트마이어의'스토리의 공장식 생산방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구요. (이것이 이현세나 박봉성, 김성모의 유산이 아니라는 점에 놀라시는 분은 없겠죠? 그래도 스트레이트마이어의 작품은 박봉성 씨처럼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도 나오진 않았답니다)
다른 하나는 이후 수많은'소년탐정'들의 출현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한국에도 소개된<매거크 탐정단>시리즈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죠. 그리고 이런 류의 소년탐정물의 전통이 최근 추리물의 전통이 깊은 일본에서 꽃피우고 있는 것이 바로<김전일 소년의 사건부>와<명탐정 코난>시리즈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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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독자들이 남학생들로 이루어진 소년지에서 추리물을 연재하게 되면, 당연히 그들이 동일시 할 수 있는'소년탐정'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김전일(사실은 긴다이치 하지메)과 명탐정 코난(혹은 쿠도 신이치)이라는 인물들이죠. 이들은 재미있게도 앞서 말한 '소년탐정'으로서의 특징과 장르 컨벤션을 지키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컨벤션을 창조해 내고 있습니다.
일단'소년탐정'의 캐릭터에는'지적인 우수성'을 보증해줄 만한 것들이 필요합니다. 이지도르는 파리의 수재들만이 다니는 학교의 기숙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보통 많은 작가들은 그것보다'혈연'에서 그 우수성의 증거를 많이 찾죠. 하디 보이스의 아버지가 명탐정이라는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쿠도 신이치의 아버지도 천재적인 추리 작가이죠. 하지만 무엇보다 크게'먹어주는'것은 바로 긴다이치 하지메의 경우입니다.
긴다이치 쿄우스케는, 일본의 유명한 추리작가 요코미조 세이지가 창조해낸, 일본의 국민탐정이라 불릴 정도의 유명한 등장인물입니다. 소년답지 않은 김전일의 천재적인 추리력은"명탐정 쿄우스케의 손자이니까"라는 한 마디로 압축해 버릴 수 있을만큼 강력한 설정이죠. 이를테면"루팡 3세는 아르센 뤼팽의 아들이다"와 같은 일본 만화 전통의 설정 말입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아마기 세이마루 일당이 이 설정을 아무 허락없이 가져왔다는 사실입니다. 실제 쿄우스케 시리즈 중에는 손자는커녕 아들이 있다는 얘기도 없구요.<소년탐정 김전일>의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실제 요코미조 세이지의 유족들과 법정공방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어쨌든 이런 혈연관계로 소년탐정들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것은 제법 효과적인 장치로 보입니다. 한참 감정이입하던 소년들이"근데 나도 학교에서 꽤 공부를 잘하는 편인데, 왜 이렇게 추리능력이 떨어지지?"라는 물음이 들 때면 부모 탓을 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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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일본의 코믹스로 이러한'소년탐정'의 전통이 이어지면서 한 가지 덧붙여진 것은 바로'트릭'과'알리바이'에 대한 과도한 집착입니다. 사실 일본의 추리물들은 시리즈를 만들 때 트릭메이커를 따로 둘 정도로 트릭에 대한 집착이 강한 편인데, 이것이 소년탐정물에 덧씌워지면서 김전일의 경우처럼'실제 세계에선 불가능하고 단순히 탐정이 풀어주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복잡한 트릭들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은 소년탐정물의 한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사실 실제 세계에서의 범죄는 복잡한 트릭같은 것이 필요없을 정도로 훨씬 단순합니다. 대신 좀 더 강력하고 추악할 뿐이죠. 이를테면 김전일 같은 천재 소년 탐정들이 100명이 있다한들 삼성 특검에서 과연 무엇을 밝혀 낼 수 있겠습니까? 트릭을 아무리 풀어봤자 권력과 금력으로 덮으면 끝인데요.
소년탐정들의 세계에서 범죄란 논리와 수수께끼의 영역에 국한된 것이어야 합니다. 그들이 상대하는 범죄자는 뤼팽처럼 예의를 목숨처럼 챙기는'괴도 신사'이거나 아니면 트릭과 알리바이를 깨뜨려 버리면 순순히 죄를 자백하는 천사표 범죄자들 뿐이죠. 적어도 강력한 운동화로 축구공을 차서 맞으면 기절할 정도의 비현실적인 약골들이거나 말이죠.
'예의와 상식이 파괴된'하드보일드한 범죄세계에 필립 말로우나 샘 스페이드 대신 하디 보이스나 낸시 드류를 보낼 수는 없는 일입니다. 금력과 권력과 배신과 음모가 추악하게 얽혀있는 범죄는 소년탐정들의 세계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툭하면 잘난 척하며 사건에 끼어드는 김전일은 백 번도 넘게 살해당했을 것입니다. 쿠도 신이치는 약을 먹는 대신 권총을 머리에 맞았을 것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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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최근 라이언 존슨이란 친구가<브릭>이란 영화를 만들면서<말타의 매>식의 누아르를 멋지게 하이스쿨 버전으로 번안하는 데 성공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이런'소년탐정'공식에 걸맞는 재치있는 유머들로 가득하죠.
라이언 존슨은 <브릭> 이후 <블룸형제 사기단>과 <루퍼>를 거쳐 현재 스타워즈 에피소드 8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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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예의와 상식이 지켜지는 한, 소년 탐정들은 셜록 홈즈나 아케치 경감에 뒤지지 않는, 진정한 명탐정들일 것입니다. 상식과 논리에 대해서는 소년 탐정이나 원로 탐정이나 별다른 차이를 가지지 못하고, 오히려 선입견에 사로잡힌 닳고 닳은 수사관들보다 훨씬 더 명쾌한 추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것이 소년 탐정들이 가지는 매력 중의 하나이기도 하구요. 최근"너희 같은 애들이 뭘 안다고 그래?"라는 말을 자주 들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논리와 상식은 명쾌한 소년의 눈에도 잘 보이는 것이라구요. 그리고 그것이 소년탐정들이 각광받는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만약 그것이 소년들에게"너희들이 뭘 안다고 그래?"라고 말해야 할 만한 문제라면, 그것은 그 문제가 논리와 상식에서 어긋난 비합리적이고 추악한 문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소년탐정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스페이드나 필립 말로우가 나서는 방법 밖에 없죠. 그들의 방식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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