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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애니+만화

원펀맨 - 취미로 히어로를 한다는 것



2015년 7월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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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펀맨] 애니메이션 2편을 핸드폰에 넣고 나와 출근길에 한 편, 퇴근길에 한 편을 보면 시간이 정확하게 맞는다는 것을 깨달았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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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재밌게 즐기는 것'에 익숙한 요즘 세대가 보기엔 쓸데없는 짓이겠지만, 인문계 출신 30대 후반 아저씨가 [원펀맨]을 보면서 지금의 사회의 젊은이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떠올리지 않는 건 꽤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원펀맨]의 시작부터가 너무 직접적인데. '구직활동'을 하던 젊은이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는 구직활동을 때려치우고 '취미로 히어로'를 시작한다. 별다른 보상도 없고, 폼이 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이 좋아지지도 않았으니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다. 그가 히어로 활동을 얼마나 하든 세상은 여전히 똑같은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자기만족만이 그가 추구하는 유일한 가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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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하는 [퀴즈쇼]에서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우린 단군 이래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야. 2~3개 국어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고, 각종 툴에도 능숙하며, 심지어 예전엔 전문인력들만 할 수 있었던 동영상 편집까지 쉽게 해내는 인재"들인 요즘의 젊은이들이 왜 이렇게 무기력하고 하찮게 취급받는지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해가 갈수록 사회적으로 생산되는 인재들의 퀄리티는 점점 높아진다. 그렇지만 아직 우리 사회의 최상층부에는 윈도우 비밀번호조차 바꿀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다. 과거의 기성세대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괴인들은 요즘의 젊은이들에게는 '원펀치'로 해결되는 문제이지만, 꼰대들로 구성된 협회는 그런 실력은 신경쓰지 않는다. 그들은 사이타마에게 C등급을 주고 일주일에 한 번씩 실적을 보여줄 것을 강요한다. 킹 같은 운 좋고 사회생활 잘하는 인물은 별다른 성과나 실력도 없이 상위 랭크를 차지하고 있지만, 사이타마는 실력을 보여주면서도 의심받거나, 다른 히어로들에게 성과를 빼앗긴다. 그리고 상위 랭커로 가기 위해서는 파벌과 줄서기도 잘해야 하며, 다른 히어로들의 텃세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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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해지기까지 무엇을 했느냐, 라고 물었을 때 사이타마는 매일 러닝과 스쿼트, 푸쉬업을 거르지 않고 3년 동안이나 했다고 말했다. 버블의 시대에서 '누구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듣고 믿고, 오직 성실함만으로 자신만의 실력을 갖추고 강해졌을 때, 이 세상은 실력이든, 강함이든 상관없는 시대가 되었다. 히어로를 꿈꾸며 공부하고 노력했지만, 이미 주변에는 히어로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히어로는 등급화 서열화 되어 있으며, 괴인을 물리쳐봤자, 그것은 성공이나 성취가 아니라 단순한 '실적'이 되어버리는 시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스스로 자기 만족을 느끼는 방법이란, 매일 작은 내 방으로 돌아와 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은 깨끗한 장갑을 씻으면서, 나는 '취미'로 , 내가 좋아서 이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답하는 것 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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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저는 취미로 회사를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