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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실프와 평행우주의 인생들 - 평행 우주는 없다 #. 원래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본 것은 몇 년 전 도서관에서였다. 제목만 놓고 보자면, '형사 실프'보다는 '평행 우주의 인생들' 쪽에 더 관심이 갔고, 책을 대여하긴 했으나, 당시엔 너무 바빠서 도저히 읽을 시간을 낼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한 줄도 읽지 못하다가 반납일이 다가와 그대로 반납했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토마스 핀천의 를 읽다가 다시 이 책이 생각났다. 다른 정보 없이 제목만 놓고 판단하기에, 당연히 처럼 물리학의 개념을 포스트 모더니즘과 연관시킨 소설 중의 하나라고 짐작했던 것이고, 연이어 읽기에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서 결국 이 책도 주문하고 말았다. 그리고 읽으면서 깨달았는데, 내 짐작은 반만 맞았다. #. 이 책의 원제는 그냥 '실프'이다. '형사'도 없고, '평행 우주의 인생들.. 2017. 3. 6.
슬램덩크, 그후 10년 * 2007.10.11에 쓴 글 スラムダンク, あれから 10年後 - *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원작의 이름을 그대로 따르되, 친밀도를 생각하여 한국 번역판의 이름을 괄호 안에 =으로 표기하였습니다. #. 오사카의 도톰보리 하천 곁으로 커다랗게 그려진 용을 따라 킨류라멘이 있는 건물 옆쪽의 골목길로 접어들면, 10평도 채 되지 않는 공간의 작은 이자까야(선술집)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무로 만든 발을 치우고 들어가면 겨우 2-3사람이 앉을 만한 탁자와 의자가 여남은 개 놓여있고, 흰옷을입은 사람 좋아 보이는 주방장이 오코노미야키와 고깃국물을 잘 우려낸 라멘을 정종과 함께 팔던 그곳에서, 오사카 답지 않게 몹시 추웠던 겨울날, 우리 세 사람은 우연히 만났다. 우리 세 사람이란 나와 도수 높은 안경을 낀 안자.. 2017. 3. 5.
신해철 – 말년末年의 양식樣式에 관하여 2014.10.27에 썼던 글입니다. #. 생각해보면 딱히 별다른 인연이 있는 사람도 아닌데, 무척 깊은 사이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살면서 무대 먼 발치에서 마주친 기억 밖에 없는데, 내 삶에서 꽤 중요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내게 신해철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를 처음 본 건 대중목욕탕의 대기실에 있는 작은 브라운관 TV속에서였다. 대학가요제의 무대에서, 피부가 하얀, 잠자리 안경을 끼고 셔츠를 입은 청년 한 명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청년은 목욕을 끝나고 나올 때까지 계속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청년이 이끄는 팀이 대상을 탔고, 목욕을 끝내고 나왔을 때 부르던 노래는 그 앵콜이었다. 나는 그 당시 그 청년의 이름을 몰랐고, ‘무한궤도’라는 팀의 .. 2017. 3. 5.
버드맨 - 자의식으로 가득 찬 #.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버드맨'은 자의식으로 가득 찬 영화입니다. 그리고 자의식에 가득 찬 영화에 어울리게, '원 씬 원 컷으로 찍은 것처럼 보이게' 연출된 영화입니다. 물론 원 테이크로 찍은 영화가 아니라는 걸 눈치채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카메라의 움직임은 절대로 끊기지 않지만, CG와 테크닉으로 이어붙인 지점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죠. 다만 이냐리투는 이러한 테크닉을 한 번 더 비틀어서 보여줍니다. 즉 원 테이크 연출과 연극의 구성을 결합시키는 것이죠. 카메라는 등장인물의 주위를 돌며 빙글빙글 보여주면서 그들의 갈등을 드러냅니다. 한 인물이 갈등하거나, 인물과 인물이 부딪치는 장면이 끝나면, 카메라는 이동하는데 이 카메라의 이동이 연극에서 막(ACT) 혹은 암전의 역할을 합니다. 그.. 2017. 3. 5.
고래 (천명관) - 그것은 로또의 법칙이었다 2001년의 한국 문단은 김훈의 [칼의 노래]로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을 맞았다. 2003년의 한국문단엔 박민규라는 괴물 같은 신예가 [지구영웅전설]과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믿을 수 없는 데뷔작을 들고 (차마 얘기하기도 민망할 정도의 진부한 레토릭을 빌려 말하자면)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리고 2004년에 또 천명관의 [고래]가 발표 되었다. 마치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포수'라던 최기문이 등장하고, 그 다음해에 다시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포수'인 진갑용이 등장했는데, 또 그 다음 해에 홍성흔이 등장한 90년대 중후반의 프로야구 같다고 할까? 그것은 신인 등장의 법칙이었다. 꾸준히 한국 소설의 흐름을 따라 잡아왔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천명관의 소설을, 그것도 [고래.. 2017. 3. 5.
마션 - 21세기에 다시 태어난 '노인과 바다' #. 공돌이가 아니라서, 소설에 등장하는 과학적인 실험들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 누군가가 - 정확히 말하자면 '씨네타운 19'의 이승훈 PD가 - [마션]을 가리켜 '긴 세월이 지나도 널리 읽힐' '고전의 반열에 올라갈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언급했을 때, 그 표현에 그리 무게감을 두진 않았습니다. 사람은 늘 그럴 때가 있죠. 뭔가 새로운 아이템을 만났는데, 그게 예상 외로 너무 괜찮을 때 잠깐 들떠서 본연의 가치보다 그것을 더 크게 평가하게 되고, 그게 지나쳐서 과장하게 되는 경우 말입니다. 특히 이승훈 PD의 언행은 - 때로는 고의적으로, 때로는 비고의적으로 - 종종 그러한 경향을 보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괜찮은 소설이겠구나' 정도로만 받아들였단 말이죠. 책을 1/4쯤 읽었을 때.. 2017. 3.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