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5.29에 쓴 글입니다. 벌써 15년 전에 쓴 글이네요.
삶의 모델이라 부를 수 있는 인물, 소년기엔 누구나 그런 거 하나 쯤은 키우며 산다. 한때 하바드를 수석졸업했다고 알려져 한국인의 프라이드를 세계만방에 떨친 것으로 오해 받았고,<7막 7장>이라는 약간 자 의식 강한 녀석의 일기장 같은 글을 약삭빠른 출판사와 손잡고 책으로 엮어 만만찮은 인세도 손에 넣었던, 영화배우 남궁원 씨의 아들, 홍정욱 씨는 자신의 어린 시절의 삶의 모델이 존 F. 케네디였다고 밝혔었다. 케네디의 전기를 읽고 감동을 먹어 케네디처럼 살기로 마음 먹었고, 그러다 보니 케네디가 나온 대학을 나와야 했으니, 그게 바로 하버드였다는 것. 그 사람의 삶의 궤적의 이정표를 대학이름으로 결정하다니, 이것으로 우리는 홍정욱이 잘난 척 해봤자 결국엔 대한민국 입시지옥의 희생양에 지나지 않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사고방식의 소유자는 생각보다 많다.
<모래시계>를 보라. 태수는 "박정희 대통령이 나온 대학"이라는 이유로 육사에 지원한다. 그리고 '반공을 국시로 삼는' 시국에 빨치산 아버지를 두었다는 이유로 낙방하고 생의 첫 좌절을 맛본다)
삶의 모델을 누구로 삼는가는 개인에게 달려있다, 고 한다. 소년들은 락스타의 스티커를 모으고, 코드도 짚기 전에 지미 헨드릭스처럼 기타를 불에 태우는 것부터 연습한다. 어떤 녀석은 주먹으로 조선을 휘어잡기 위해 김두한의 중절모를 사서 쓰고 다니고, 어떤 녀석은 체 게바라의 티셔츠를 입고 평전을 읽으며 레게 파마를 했다가 부모님께 뒤지게 맞기도 한다. 누구처럼 살고 싶다, 누구처럼 살테야, 소년들은 꿈을 꾸며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그것은 생의 이정표
가 된다.
성장하면서 많은 청춘이 좌절의 길로 돌아서지만, 몇몇은 그리하여 또 다른 모델이 된다. 누구누구의 전기를 읽고 열심히 공부하여 어느 어느 위치에 오른 누구누구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그러나 더러는 그 모델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 * *
중앙일보 스포츠 섹션, 5월 29일자. 혼혈인 축구선수 김준. 생부에 대해선 미육군 상사라는 것밖에 모른다고 했다. 무릎의 찢어지는 부상을 입고 들어온 날, 엄마는 "그러길래 다칠려면 축구 같은 걸 뭐하러 했냐" 고 김준을 야단쳤고, 김준은 "그럼 도대체 뭘 하란 말이냐!"라고 대들었다. 십몇 년만에 자길 키워준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내지른 일갈이었다.
혼혈아. 깜둥이. 아버지가 주고 간 것은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검은 피부와 당신들의 민족특성인 놀라운 유연성과 체력뿐. 김준이 축구를 시작하면서부터 아이들은 김준을 "깜둥이"가 아니라 "펠레"라고 불렀었다.
그리고 김준은 이제 혼혈아로서는 최초로 청소년 대표팀에서 태극마크를 단다.
그런 김준의 삶의 모델은 펠레일까. 마라도나일까. 아니었다. 어머니는 김준에게 항상 "가수 인순이 아줌마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라고 가르쳤다. 그에겐 그것밖에 다른 선택이 없었다. 혼혈아라는 멍에를 지고, 이 땅에 태어난 그에게 모델이 될 인물은 '인순이 아줌마' 뿐이었다.
김준은 말했다. 자기가 인순이 아줌마의 나이가 되었을 때 자기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김준처럼 되어라"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나도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 역사의 어두운 한켠의 짐을 지고 사는 그들에게 조금 더 많은 선택이 주어지기를. 그것이 김준이건, 누구건 간에, 이 땅 어디에선가 그런 신화가 될 인물들이 조금 더 많이 커가고 있기를.
그들도 우리처럼 조금은 더 많은 모델들을 가질 수 있기를 말이다.
ps.
어느새 세월이 흘러서 K리그에서 선수생활까지 하고 은퇴도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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